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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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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전 회장은 회삿돈 횡령과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됐다가 징역형과 벌금형을 받았는데 벌금 254억원에 대한 노역의 대가로 일당 5억원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문제였다. 2010년 항소심 판결 후 해외로 도피했다가 4년 만에 귀국한 허 전 회장은 벌금을 몸으로 때우겠다며 70노구를 이끌고 노역장에 나타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세포탈범에게 과도한 특혜를 베푼 법원에 대해 항의 시위하는 군중들의 피켓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귀에 익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1988년 옥살이 도중 탈주한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던 중 외쳤다는 이 말은 재벌가의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야유로 인용되고 있으며,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은 재벌의 초법적 관행의 극단을 보여준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을 당하자, 경호원을 대동해 가해자들을 산에 끌고 가 마구 폭행하는 등 조폭을 방불케 하는 행위를 했다. 김 회장은 이 일로 구속기소됐지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아 재벌 총수 봐주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2010년에는 더욱 기막힌 소식이 서민들을 우울하게 했다. 재계 3위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M&M 통운 대표가 회사일에 불만을 품고 1인 시위를 한 탱크로리 기사를 사무실에 불러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면서 1대에 100만원, 나중에는 1대에 300만원이라며 피투성이가 된 기사에게 2천만원짜리 수표를 폭행의 대가로 던졌다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우리나라 재벌이 국민들에게 호의적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0년대 전후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기도 한 우리나라 재벌기업이 2세, 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창업주와는 다른 일탈의 사례를 종종 보여준 측면이 있다.
이와는 달리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유수의 재벌들이 재산의 사회환원을 통해 존경받는 인도주의자로 거듭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미국 재벌의 사회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철강왕 카네기의 일화는 유명하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한 카네기였지만 돈을 쓰는데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의 90% 이상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에 환원했는데 그 금액이 무려 3억6천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일이니 오죽하겠는가.
그가 세워서 기부한 공공도서관이 무려 3천개가 넘고 시카고 대학 등 24개의 대학을 설립해 사회에 기증했을 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도 거액을 쾌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기부문화의 전통은 록펠러에 이어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현대의 부호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사회 양극화 현상이다. 부익부빈익빈의 괴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벌금을 부과해 놓고 그 변제의 대가로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선고한 법원이나 선고유예라는 경미한 구형을 하고도 항소조차 하지 않은 검찰, 몇 년 동안 해외로 도피해 떵떵거리며 살다가 슬그머니 귀국해 50일 정도 유치장에서 지내면서 벌금 탕감 받으려고 한 재벌 기업인 중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지도층의 민낯이 아닐까. 국민들만 불쌍하다.
재산의 형성과 관리, 그리고 소비, 지출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기본을 지켜야 할 대상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재산공개를 요구하는 법제도는 당연하다 하겠다. 특별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에 중앙공직자윤리위원회와 경상남도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재산변동상황에서 윤영석 국회의원은 지난해보다 2억5천만원이 줄어든 2억7천여만원, 나동연 시장은 5억3천여만원이 줄어든 54억6천여만원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