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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교회 강진상 담임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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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계의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그의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이 사건을 만든 장본인은 많았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탐심, 로마 총독 빌라도의 우유부단한 행동 등을 지적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 유월절을 맞아 총독 빌라도는 죄수 한사람을 석방해야만 했다. 지금의 특사 제도처럼 당시 유대 나라에도 특사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전에 예수님이 몇몇 주동자에 의해 고소된 상태였다. 빌라도는 이 고소가 부당했고 음모에 의한 것임을 잘 알았다.
잡혀 온 예수님이 무죄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석방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군중의 압력 때문이었다. 당시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라바와 예수와의 선택에서 바라바를 선택하고 말았다.
군중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자를 놓아주면 당신의 황제 가이사보다 예수가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며 “만일 이 소식이 당신의 황제 가이사에게 들어가기라도 하면 당신의 신상에 이로울 것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군중의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기 영합을 위해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는 정의에 따른 선택보다 군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양심의 선택보다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진리를 선택하기보다 다수가 원함을 선택했다. 정의의 소리보다 여론을 따른 선택을 했다. 이러한 그는 당연히 비난 받아야만 한다.
빌라도의 우유부단한 행동과 역사상 가장 잘못된 재판을 통해서 다수가 반드시 진리가 아님을 우리는 빌라도에게서 배워야 한다. 유행을 따르다가는 우리 마음 속 확신이 변질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인기가 반드시 정의는 아님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시선보다 인간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배워야 한다.
전 세계 수십억 그리스도인이 사도 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며 얼마나 그 이름이 저주스럽게 등장하는가? 그는 최고 결정권자로서 마땅히 죄 없으신 예수를 석방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역사의 죄인으로 정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