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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시무덤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시무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4/22 10:06 수정 2014.04.22 10:06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김해경

동그란 봉분 하나 만들래요
매일 아침 무릎엔 물이 고이고
벌레가 와글거리는 눈동자로는
대문 앞도 나갈 수 없어
빨간 벽돌로 관을 짜 넣은
무덤 하나 만들래요
부장품으로는
눈물나게 가여운 서정 한 토막과
지루한 관념 한 움큼
여백과 문장과 쓸쓸함과 읊조리다
눈이 찢어진 고양이와
올리브나무와 투명한 술잔
겨울 들판과 해약해버린 보험 증권
햇살 한 자락과 알레고리와 메타포
은유와 여행, 침묵
침묵을 잠재울 부적
난 어느새 작별을 읽습니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으리라는 주술을 외며
시의 무덤으로 걸어들어 갑니다
무덤 속은 어두울 지나
나와 놀아줄 부장품들이 비로소 깨어
내 심장에 돌칼을 꽂습니다
훗날 성전이 되어버린 무덤 아래 돌계단
시가 되지 못한 시들이 해골처럼 굴러다닙니다



김해경 시인
부산 출생. 2004년 계간『시의 나라』로 등단. 부산작가회의․부산시인협회 회원. ‘시무덤’동인. 시집으로『아버지의 호두』(푸른별, 2004),『메리네 연탄가게』(지혜, 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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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조각난 파편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세계, 수많은 타자들의 조각들을 바라보는 자이다. 조각난 타자란 세계의 폭력에 의해 상처 입거나 소외된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타자를 본다는 것은 결국 “무덤”과도 같은 이 세계 속에서 파편화돼 있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눈물 나게 가여운 서정 한 토막과” 등으로 열거되는 시구절들은 규범화되고 정상적인 문장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세계, 소통 불가능한 이 사회에 대한 부정의식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아주 어둡지만은 않다. 시인은 “부장품들이”, “내 심장에 돌칼을 꽂”는 다고 해, 소통의 한 양식으로서 새로운 “시”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우리시대의 시는 어떠해야 하는가. “무덤”과도 같은 이 세계 속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며, 시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딱히 이것이라고 떠오르는 대답은 없다.

물음 자체가 적확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물음이 자연스레 떠올리게끔 이 시는 나에게 우리시대의 시의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시대를 뛰어넘는 시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또 무엇일지, 자꾸 생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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