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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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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지 1주일 만에 교육부는 초ㆍ중ㆍ고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대부분 수학여행이 상반기에 추진되는 만큼 이 조치는 올해 해당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모두 취소된다는 말이다. 하기사 이 시점에서 어느 부모가 장거리 여행에 자식을 순순히 보내주겠는가. 사회 전반에 일시적 집단 트라우마 현상을 빚고 있는 현실에 비추면 당연한 조치라 볼 수도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행정부처 일반의 무능력에 대해 많은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형식적인 안전 매뉴얼과 지휘ㆍ조정 능력 부족, 안전불감증, 전시행정 노출 등 사고 당사자와 가족, 일반인 모두를 실망시키는 행태가 원성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 발표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여론에 몰려 급하게 내놓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차제에 초ㆍ중ㆍ고 수학여행에 대한 발전적인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수학여행 취지와 교육적 효과가 상당히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은 인정할 만하다. 과거 시대상에서 탄생한 집체교육의 한 방식인 수학여행은 가족여행이 보편화된 현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프로그램 부실도 한 몫 하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 수학여행은 교사와 학생들의 휴가처럼 인식돼 목적지에 풀어 놓으면 끝나는 소모적 행사로 변질되기도 한다.
대규모 놀이시설이 소재한 지역으로 행선지를 잡는 자체가 그런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대학입시 위주 교육정책이 낳은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구조적인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학교와 여행업체와의 결탁이 그것이다. 오랜 관행이자 독버섯처럼 없어지지 않는 폐단이다.
필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처음 조직된 1990년대 후반에 한 중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수학여행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A중학교는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해 5월 설악산 3박 4일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문제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학교측에서는 수년간 지역 한 여행업체와 수의계약을 통해 수학여행의 모든 것을 일임해 처리하고 있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주축이 된 운영위원회는 직접 실사를 통해 아이들의 안전과 후생을 확인한 뒤 시행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교통수단과 숙박업소, 식사 품질 등을 자세히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교사 2명과 학부모위원 2명이 한 조가 돼 목적지를 찾았다. 저녁 늦게 도착한 현지에는 지역 여행업체 임원이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관행적인 계약을 로비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실사단 일행은 기존 업체가 제공할 여행계획과 숙소에 대한 조사를 한 뒤 주변 다른 조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똑같은 조건과 비용으로 훨씬 양호한 다른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교통편에 대한 검증도 다시 했다. 열 대 이상의 대형버스가 동원돼야 하는 특성상 안전보장은 필수였다. 이 부분은 공개입찰을 통해 해결했다. 물론 학교측과는 다소 마찰이 있었다. 오랜 관행으로 업체와 유착해 온 학교측으로서는 운영위원회가 학교행정을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불만을 나타냈지만, 그해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생들의 만족도가 그 전 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게 나왔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년의 아버지 세대는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다. 친구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쌓은 우정은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쉽게 접하지 못한 장소나 풍물에 대한 경험들이 장래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동기가 됐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취소하고 폐지하기만 한다면 사고가 주는 교훈을 제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아니다.
교육당국은 차제에 수학여행제도에 대한 성찰과 개선을 통해 시대 여건에 맞는 새로운 모습의 수학여행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러한 새 모델에는 우리 학생들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안전 시스템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스런 기억을 새로운 탄생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