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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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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 한 마디 나누기 어렵다. 가급적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묻어 둬야 하는 시간이 오래 계속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이틀쯤인가 자습 시간에 반장이 우리도 뭔가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며 진도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물품을 사서 보내면 어떻겠냐고 물어 왔다. 기특한 생각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몰라 조금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런 후 얼마 뒤 현장에서 부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논란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평상시였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지라도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상처줄 수 있는 일이라 말과 행동이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른이 그런 말과 행동을 했다니 부끄러웠다.
또 하루는 우울한 기분에 기분전환을 위해 노란색 잠바를 입었더니, 이런 슬픈 상황에서 교사는 옷차림도 화려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순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날부터 밝은 색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페이스북, 카톡, 밴드 등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상황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전하거나 알지 못했던 일에 대해서 알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나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 줄 댓글마저 달수가 없다. 지난 일요일에는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평소 존경하는 선배 교사가 카톡으로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아마 그 선배 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인식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작은 위안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가 구체적인 고민거리다.
이번에 일어난 일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라기보다 오히려 인재에 가깝다는 얘기를 들으며 슬픔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와 수치심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적절한 답을 찾기보다 자연적 인간 감성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서 제안하고 행동하기보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본래적인 말과 행동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데,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슬픔의 연대라고 말하고 싶다.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노란리본을 달고, 분향소를 설치해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일이 그러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런 일을 하자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픔을 함께 하며 슬픔에 공감하고자 하는 자연스런 감정도 공문서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관료사회의 일원이라 어려운 것일까? 그럼에도 슬픔에 연대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도 분향소가 설치됐다. 분향소 옆에서 노란리본을 나눠주며 있어보니,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어린아이와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학생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 조문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모두 노란리본에 소중한 마음을 적어 매어 달고 집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을 오랫동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