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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관리사무소와 은행에 무작정 찾아가 서명서류를 비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하루 업무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 후나 주말이 되면 직접 발로 뛰어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무 열심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대뜸 물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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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일이다. 김칠회 씨는 본가인 의령에 갔다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당시 6살이던 작은 딸이 간밤에 열경련을 일으켰다. 차로 30분 거리 읍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치료는 고사하고 사지경직까지 나타났다. 다시 30분을 내달려 마산 삼성병원으로 갔다.
응급실 의사가 ‘초동조치가 늦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딸아이는 7시간 만에 무사히 깨어났다. 하지만 집 근처에 응급실이 없을 때 어떤 상황까지 일어날 수 있는지 김 씨는 뼈저리게 느꼈다.
“얼마 전 PD수첩에서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교과서에 일본해와 동해를 함께 쓰도록 한 일명 ‘동해병기법’이 통과된 내용이 방영됐어요. 중학생 아들을 둔 평범한 미주 한인이 동해병기 운동을 시작해 일본 정부의 대형로펌과 조직적 로비에 맞서 결국 이겨냈다는 내용이죠. 웅상주민들의 목소리도 이런 힘이 있어요. 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김 씨는 단순히 지인들의 서명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서명서류를 비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무작정 푸르지오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웅상농협을 찾아 협조를 부탁했다. 그렇게 김 씨가 받은 서명이 수백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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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태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요즘은 퇴근하면 방긋방긋 웃는 10개월 된 아들 보는 즐거움에 살고 있다. 하지만 3주 전부터는 아들 얼굴 볼 시간도 없다. 퇴근하면 서명종이를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선다. 주말에도 공원이나 근처 시장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고 있다. 아들과 놀아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이게 다 아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산 성모병원, 해운대 백병원, 서부양산 베데스다병원, 부산 침례병원 등 안 다녀본 병원이 없어요. 한 달 전 고열과 저체온증을 오가는 아들 때문에 근처 응급실을 다 찾아 다녔죠. 이때 제가 정말 필요한 것은 전문의사의 조언이었어요. ‘해열됐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말 한마디 듣기 위해 새벽 2~3시에 한 시간 동안 병원을 찾아 헤매며 아내와 아들을 고생시켰어요. 다시는 이런 일 겪고 싶지 않아요”
강 씨는 응급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더는 원치 않는다. 준 종합병원급 병원이 다시 정상 운영을 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응급의료 역시 ‘응급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웅상지역 소아과에 소아응급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웅상보건지소에 야간 응급치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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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씨는 네 아이의 엄마다. 아이가 밥 먹다가 갑자기 장이 꼬이고, 자동차 문에 손이 끼고, 인라인 타다가 엉덩이뼈가 골절되는 등 정말 많은 응급상황을 겪었다.
그 때마다 조은현대병원 응급실을 갔다. 대부분 주말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걱정이 태산이다. 평산동에 돌도 안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생도 살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응급상황이 많은데 동생을 생각하면 더 걱정된다.
“서명을 받으면서 느낀 건데,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주민들이 너무 많아요. 의외였어요. 하지만 상황을 얘기하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죠. 그래서 서명운동을 참 잘 시작한 것 같아요. 보다 많은 주민들이 웅상지역 의료현실을 알아야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죠. 이번 서명운동은 ‘당장 병원을 만들어내라’가 아니예요. 주민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이 ‘제발 이같은 응급상황을 알아달라’는 거죠”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 씨는 서명서류를 항시 비치해 놓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서명을 받고 있다. 또 마당발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천성리버타운 아파트 주민과 소주공단 직원들에게도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