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우리네 식탁의 화두는 단연 ‘6.4 지방선거’였다. 신물이 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이니 어쩌겠나. 세월호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찾기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11만9천885명의 투표자 가운데 이번 선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양산시민들을 만났다. 생애 첫 투표를 한 20살 청년, 국적은 다르지만 지역일꾼은 내 손으로 뽑겠다는 다문화가정 여성, 그리고 공정선거지원단 활동으로 선거문화를 몸소 느낀 시민들까지…. 6.4 지방선거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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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들 자신이 말한 공약만큼은 꼭 지켜주길
‘처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지난해로 스무 살, 성인이 된 김지성(21, 평산동) 씨는 처음으로 해본 것이 정말 많았다. 대학생이 되니까 혼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 질 때쯤, 더 없을 것 같은 ‘처음’이 또 다가왔다. 바로 ‘선거’인 것이다.
김 씨는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주변 어른들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것보다 선거 공보물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웅상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활동정보통신원으로 활동 중인 김 씨는 평소 관심을 두던 ‘문화’에 대한 공약을 밝힌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김 씨는 “웅상은 양산보다 문화를 누릴 공간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며 “청소년을 비롯해 웅상 주민이 인근 지역으로 나가지 않아도 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문화에 주목한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투표장에 가는 일이 처음이라 기대했지만 생각만큼 대단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간단한 투표 절차에 놀랐고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생각보다 낮은 투표율에 조금 실망한 게 사실이다.
김 씨는 “투표가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주변 친구 중에서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집으로 오는 공보물만 봐도 누구를 찍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데 자신의 권리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번 선거로 당선된 이들에게 ‘약속’을 끝까지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후보들이 공약한 사항만 지켜도 지금보다 살기 좋은 양산이 될 것 같다”며 “자신이 한 말 만큼은 지켜서 시민이 정치에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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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도지사 보궐선거 이후 두 번째 투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선거는 의례적인 행사죠. 한국에 와서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1표씩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 정말 좋은 제도라고 느꼈어요. 소중한 한 표인 만큼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고 공약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했어요”
6.4 지방선거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왕영(41, 교동) 씨는 중국 심양시 출신의 다문화가정 여성이다. 2004년 결혼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왕 씨는 이번이 첫 투표는 아니다. 2012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같은 해 있었던 대통령 선거는 참여하지 못했다.
영주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할 일꾼을 뽑는 일이라 어떤 선거보다도 값진 권리로 느껴진다고.
왕 씨는 “6살, 3살 두 딸아이가 있어 ‘경남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눈여겨 봤다”며 “한국에 와서 안타까웠던 것이 학업에 시달리는 아이들이었는데, 학업이 아닌 창의적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공약이 있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양산시장과 도의원, 시의원은 공보물에 있는 공약을 꼼꼼히 살펴봤다”며 “교동은 교통이 불편한 편인데, 도로 개선이나 교통 체계를 개편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세운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현재 네일아트를 배우며 일자리를 찾고 있는 왕 씨는 “일자리, 취업 관련 공약도 눈여겨 봤다”며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양산지역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당선자들에게 바라는 바를 묻자 “이번 선거는 다문화가정 관련 공약이 거의 없었다”며 “행복과 희망을 보고 한국으로 결혼해 온 많은 여성들이 불행과 절망을 안고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엄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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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이 난무하는 선거는 정치 불신으로 이어져”
양산시선거관리위원회 공정선거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정호(39, 동면, 사진 왼쪽)ㆍ 이성현(27, 양주동, 사진 오른쪽) 씨를 지난 4일, 청어람아파트 투표소에서 만나 6.4 지방선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정호 씨는 민원처리 등 선관위 사무실 업무지원과 지도단속 일을 하는데 선거 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공정선거에 일조하는 게 좋아 공정선거지원단이 됐다.
선거현장을 뛰며 선거 지도 단속을 하는 이성현 씨는 국회의원, 시장, 의원 등 지역 정치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정치인과 선거를 알고 싶어 공정선거자원단으로 활동했다.
이번 선거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들은 공통된 의견으로 “선거가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아직도 선거 현장에서 상대 후보나 다른 당에 대한 비방, 비난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남을 깎아 내리고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난무하니까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 해지고 그 결과는 정치 불신으로 이어 진다”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교육감 공보물에는 교육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시장, 시의원 후보들은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선거홍보물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 보다 무엇을 했다가 더 많다”며 치적자랑 보다 앞으로 활동에 대해 고민하기를 당부했다.
공정선거지원단 활동을 통해 지역에 더 애정을 갖게 됐다는 이들은 “이전에 비해 부정ㆍ불법 선거, 돈 선거가 많이 줄어 든 것 같다”며 다만, “돈 쓸려고 나온 후보들인데 왜 돈을 못 쓰게 막느냐”고 항의하는 일부 어른들로 씁쓸했다고 전했다.
한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