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대종사는 불교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큰 스님이다. ↑↑ 일송 스님
시인
통도사 극락암ⓒ
경봉 큰 스님의 삶의 궤적을 통해 대종사가 추구한 달마, 즉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현했는지 연재한다. 글쓴이는 시인이기도 한 통도사 극락암 일송 스님이다. 첫 회로 경봉스님의 연대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스님의 속명은 용국(鏞國), 법명은 정석(靖錫), 시호는 원광(圓光), 경봉은 법호(法號)다.
1892년 4월 9일 : 경남 밀양군 부내면 계수동(서부리) 출생. 아버지 김영규(金榮奎) 광주 김씨. 어머니는 안동 권씨.
1905년(14세) : 밀양군 서부리 죽하재 강달수 선생 문하에서 <사서삼경>을 마침.
1906년(15세) : 8월 4일 모친상을 당함.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나고 죽는 것이 없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함.
1907년(16세) : 6월 9일 양산 통도사 성해화상을 은사로 삭발 득도함. 10월 30일 청호화상(淸湖和尙)으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음.
1911년(20세) : 4월 8일 해담화상으로부터 비구계(比丘戒)와 보살계(菩薩戒)를 받음.
1912~1914년(21세~23세) : 통도사불교 전문 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서 <화엄경>을 배움.
1915년(24세) : 통도사를 떠나 양산 내원사 혜월화상을 참방. 해인사 퇴설당, 금강산 마하연, 석왕사 내원선원에서 선(禪)을 수행.
1919년(28세) : 양산 내원사 주지.
1925년(34세) : 통도사양로만일 염불회 창설.
1927년(36세) :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21일 동안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를 개설해 용맹정진하던 중, 12월 13일 오전 2시 30분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활연히 대오(大悟, 크게 깨닫다).
1932년(41세) : 1월 31일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
1935년(44세) : 9월 19일 대본산 통도사 주지.
1942년(54세) : 10월 3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1946년(55세) : 12월 불교혁신총연맹본부 위원장.
1949년(58세) : 대본산 통도사 주지.
1950년(59세) : 밀양 무봉선원에서 수년동안 주석.
1953년(62세) : 2월 30일 좌선중 심불방광처(心佛放光處)를 체득.
1953년(62세) : 11월 3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祖室)로 추대됨. 이후 30년을 극락암에 주석하며 선원 대중과 후학을 지도.
1969년(78세) : 특별수도정진처 아란야 창건.
1982년(91세) : 7월 17일 (음력 윤 5월 27일) 미질을 보이던중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묻는 시자에게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빗장을 만져보거라”는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심. 오후 4시 25분. 세수 91세. 법랍(法臘) 75세.
1985년 : 6월 26일 통도사 일부문 밖에 탑과 비를 세움.
저서
법어집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
한시집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 <선문묵일점 禪門墨一點>
서간집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일지 <삼소굴일지三笑窟日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