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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공부보다 삶이 힘든 아이들..
오피니언

[교단일기] 공부보다 삶이 힘든 아이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6/17 09:24 수정 2014.06.17 09:23



 
↑↑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며칠 전 매일같이 지각하는 녀석들이 있어 야단을 쳤더니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도리어 대들 듯이 불손한 태도를 보이고 무성의한 대답을 하는 바람에 큰소리로 야단을 치느라 온종일 목이 아팠다.

학기 초에는 단단히 야단을 쳐서 지각하는 버릇을 고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벌로 청소를 시키고 상담도 한다고 했지만, 효과는 그때뿐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 효과가 나타나려면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지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아침 자습시간과 조회시간까지 등교하지 않으면 수업이나 여러 업무에 시달려 그 지각대장 녀석들을 불러 볼 여유가 생기지 않아 지도할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종례시간에 만나면 제대로 지도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교실에 가면 녀석들은 이미 달아나 허탕만 치고 만다. 매일 지각대장 녀석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녀석들과 허물없이 터놓고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녀석들의 부모님께 전화해서 도움을 부탁하고 한 명씩 불러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특별하지도 않았다. 일찍 못 일어나서, 아르바이트를 늦게까지 해서, 게임을 하다 늦게 자서, 피곤해서, 학교 오기 싫어서란다. 어떡하면 지각을 안 하겠는지 물어보니 모두 등교 시간을 늦춰 주면 1교시 전에는 오겠다고 한다. 공통으로 하는 말이라 이해는 하지만 학교에서 정한 등교 시간을 가급적 지키고 늦을 때는 반드시 연락하라고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말았다.

그 이후로 지각대장 녀석들은 1교시 수업 전에는 꼭 등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지각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음의 문제가 더 심하다. 시간별로 준비해야 할 교과서나 필기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수업시간은 공부와 상관없이 잠을 자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다 못해 화가 나 “도대체 왜 이렇게 됐냐?”고 소리치며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샘 시간에는 늦지 않고 들어오잖아요”란다.

순간 머릿속에서 상반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엄격하지 않아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적당히 시간만 보내는 요령을 익힌 게 아닌가 하는 것과 그래도 선생님과는 조금이라도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머리까지 나다가도 한편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공부하는 이유를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만으로 지나치게 강조해 아이들을 찌들게 하고 말았다는 자조에서다. 딱딱한 교과서 지식에만 빠져들지 말고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경험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보다 삶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란 다닐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지식교육보다 풍성한 인문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해 경험하도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매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교과서에서 살짝 벗어나 여유를 가지며 삶의 경험을 아이들과 많이 나누는 일이 어쩌면 공부보다 삶이 힘든 아이들을 새로워지게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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