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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경봉스님 불교세계] 경봉대선사 ‘달마’ 프롤로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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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스님 불교세계] 경봉대선사 ‘달마’ 프롤로그 ②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6/24 09:46 수정 2014.06.24 09:45



 
↑↑ 일송 스님
시인
통도사 극락암
 
해 뜨는 동방의 나라,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산줄기가 1천미터 고지에서 청도 운문산, 밀양 천황산, 재약산과 언양 가지산, 간월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신불산, 양산 영축산, 천성산으로 내려서서 부산 동래 명승지 금정산으로 흐른다.

영남알프스라는 별칭이 붙은 이 구간은 많은 산악 애호가의 순례지로 각광받는다. 거기에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편 형상이라 해 영축산! 인도의 영축산을 닮아 천하 절경을 이룬 수행자의 보금자리는 소박하면서 담백한 향취를 느끼게 한다.

극락암, 암자라 하지만 수선안거 철에는 대중이 50여명에 이르니 살림살이가 제법 규모가 있다. 수선안거일(修禪安居日)이 되면 걸망을 진 젊은 수좌(首座)들이 삼삼오오 찾아든다.  산수유 꽃망울이 먼저 봄소식을 알리면 도량 곳곳에 매화, 백목련, 목단. 함박꽃, 불두화가 펴 초파일이 다가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 무렵 영산홍은 연중 제일 치명적인 색깔의 꽃잎을 달고 잿빛 골방에 쌓인 세월을 유혹한다.

‘미치도록 좋아라! 봄바람’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에 꽃피는 봄날이다. 사계절의 법문이 제각각 묘미와 흥취가 있지만 봄은 그냥 그대로 온갖 꽃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생명의 잔치다. 간혹 노사(老師)와 젊은 선객이 입씨름을 하고 선지(禪旨)를 드러내 여래와 조사들의 비밀한 뜻을 내비친다.

 그때 봄기운이 완연히 오른 한 젊은 수좌가 무량수전 법당에서 갑자기 노승에게 물었다.

“이것을 일러 무엇이라 합니까?”

눈을 부릅뜬 채 젊은 수좌가 소리친다. 이는 다름 아닌 존재의 질문이다. 생명을 걸고 사력을 다해 내면에서 내면을 향해 울부짖는 사자후(獅子吼)다. 포효하지 못하는 사자는 사자가 아니다. 마땅히 선사의 후예라면 존재 저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의문이 있어야 한다. 이에 노승은 빙긋이 미소로 화답한다.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과거로 되돌아가보자.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아시방오물물두, 我是訪吾物物頭)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목전즉견주인루, 目前卽見主人樓)
허허 이제 만나 의심 없으니        
(가가봉착무의혹, 呵呵逢着無疑惑)
우담발화 꽃빛이 법계에 흐르네     
(우발화광법계류, 優鉢花光法界流)’
<경봉대선사 오도송(悟道頌)>

진리의 참 빛을 좇아 행운유수의 길에 나선지 이십여 년, 선사는 촛불이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홀연 깨침을 얻었다. 촛불의 춤! 고즈넉한 선실의 어둠을 밝히는 자그마한 불빛이 일렁이며 다겁생래(多劫生來)의 무명을 날려버리고 지혜의 화현으로 나투는 순간이다.

일대본분사, 대장부의 첫 장을 여는 찰라이다. 대의심(大疑心), 대분심(大憤心), 대발심(大發心)을 거쳐 오묘한 선(禪)의 경계를 타파한 즐거움이 법열로 흘러넘쳤다.

이 일별(一瞥)은 평범한 일별이 아니다. 수행자라면 저 마주보는 산이 마르고 닳도록 궁구하고 척파(斥破)해야 할 어엿한 대장부의 살림인 것이다. 그것도 극락암 화엄산림법회 중에 일어난 상서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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