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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 소금] 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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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6/24 09:47 수정 2014.06.24 09:47



 
↑↑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톨스토이는 “전쟁은 인간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다”라고 말했다. 더 큰 죄악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은 6.25가 북침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6.25는 명명백백한 남침이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북한 공산당이 선전포고도 없이 500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총 공격을 가해 옴으로써 우리 강산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로 변하고 말았다.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휴전 협정이 되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약 300만명의 인명 피해가 나왔고, 납치만 8만5천명, 행방불명 30만명, 남편을 잃어 과부가 된 사람이 30만명, 부모를 잃은 고아가 20만명이 넘었다.

파괴된 교회는 2천112군데에 이르렀고 학살된 목사의 수는 535명이나 됐다. 북한은 겉으로만 평화협상을 제의하며 남북통일 최고입법회의를 서울에서 열자고 제의했다. 남북국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을 제의한 것이다. 남한은 모두 안심하고 있었다. 비상경계령이 해제돼 국군 3분의 1이 외출 중이었다.

대공포, 자주포, 전투기 같은 무기도 없었다. 이때 북한은 탱크를 앞세우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고 7월 20일, 불과 25일 만에 대전이 점령당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는 지금도 평화를 말한다. 민족을 내세운다. 그런 자가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6.25 발발 전, 한반도는 미군 철수 주장으로 혼란이 있었다. 북한 공산당도 미국과 소련의 철수를 주장했으나 속임수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철수를 똑같이 보면 안 된다.

소련은 국경선을 넘어가는 것이기에 언제든지 다시 넘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태평양을 넘어가는 것이다. 국민은 미군 철수를 반대했지만 친북 세력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민을 선동했다. 결국 1949년 6월에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고 그로부터 1년 후, 북한은 남침했다.

소련과 중공군이 순식간에 국경선을 넘어 북한을 도왔다. 65년 전처럼 오늘도 무조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한미동맹을 가볍게 생각하고 반미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대남적화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다.

지금도 휴전선에는 600문의 포가 서울을 향해 있다. 전쟁 억지력을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은 주둔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 일본, 중국, 러시아 중 만약 또 다시 남북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는가?

북한 주민은 사랑하되, 북한 공산당은 경계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은 악순환의 연속이었지만 대한민국은 선순환의 연속이었다. 6.25를 통해 얻은 것들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평화통일로 이어져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이룬 한국 경제 성장이 세계 경제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 세계 평화를 앞당겨야 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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