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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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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하자 부통령이 된 지 불과 82일 만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의 업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몇 가지 이야기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국왕인 히로히토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그 결과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또 6.25가 발발하자 즉시 파병 결정을 내려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결집을 주도해 대한민국을 방어했다. 그러므로 그를 우리 한국의 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키가 작아서 ‘리틀 맨(little ma n)’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퇴임 후 그는 서방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막아낸 거인이란 의미로 ‘리틀 빅 맨(little big man,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을 부여받았다. 그 무엇보다 트루먼 대통령은 참다운 청백리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훌륭한 정치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그는 32명의 전임 대통령에 비해 미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결정을 가장 많이 내린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의 삶에서 더 엿볼 수 있다. 그의 집은 부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대통령으로 백악관에서 거주할 때와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집에서 살았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52년 그의 수입은 미 육군 연금으로 받는 연 1만3천507달러가 전부였다. 그는 우편물을 붙이기 위해 자기 돈으로 우표를 사고 침을 발라 편지를 발송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회가 소급해서 ‘수당’을 지급해 연 2만5천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후임으로 취임하자 그와 영부인 베스는 경호원도 없이 미주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백악관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다. 그는 고액 급여를 받는 회사 경영자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당신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란 직책이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의 것이라오. 그 자리는 사고파는 자리가 아니오”라며 제안을 거절했다.
1971년 5월 6일 미국 의회는 트루먼의 87세 생일을 맞아 그에게 ‘영예의 메달’을 수여하려고 했지만 “저는 의회의 메달이나 다른 어떠한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상을 사양하는 회신을 의회에 보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사적여행 경비와 식대를 모두 자신의 돈으로 냈다고 한다.
말하자면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사망할 때 갖고 있던 유일한 재산은 자신이 평생을 살았던 미주리에 있는 집이 전부였다.
이번에 취임하는 민선 6기 당선자도 퇴임 후에 트루먼 대통령처럼 시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청백리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