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57)이 10여년 만에 천성산을 찾았다. 지율 스님은 2003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도롱뇽 소송’과 ‘단식농성’으로 ‘천성산 지킴이’, ‘생태계 어머니’ 등으로 불리고 있는 환경운동가다. 그는 지난 1일 천성산 터널 개통 이후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천성산에 다시 올랐다. 본지와 산림생태학 이병천 박사도 동행했다. 2회에 걸쳐 동행기를 심층 보도한다. ⓒ
천성산에는 크고 작은 산지습지가 22개, 골짜기가 12개 있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천성산을 발원지로 삼은 하천이 적지 않고 사시사철 마르지도 않는다. 양산천은 물론 부산 수영강과 울산 회야강 역시 천성산이 발원지다. 그런데 천성산이 변하고 있다. 촉촉한 물을 머금고 있던 천성산 습지가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천성산 해발 700m 지점 밀밭늪
물 머금지 못하고 흘려보내
지난 1일 지율 스님과 함께 찾은 곳은 천성산 해발 700m 지점에 있는 밀밭늪. 2002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화엄늪보다 조금 작은 습지이지만, 이곳 역시 희귀한 동ㆍ식물을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곳이다. 밀밭늪 들머리 팻말에도 표시돼 있듯이 도롱뇽, 꼬마잠자리, 끈끈이주걱 등 보호종들이 다량 서식하고 있다.
밑밭늪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지율 스님은 한 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변했구나…” 스펀지처럼 물을 흡수해 머금고 있어야 할 습지가 말라 있었다. 멀리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늪을 헤맸다. 물고랑이 만들어져 있었다. 화분처럼 물을 안고 있어야 하지만, 물고랑을 통해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 수분을 머금고 있어야 할 밀밭늪 땅이 말라 있다. 수위측정기는 이미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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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나무ㆍ소나무 침범
육화현상 뒷받침하는 증거
습지가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오리나무다. 습지에 서식하는 진퍼리새 사이사이 오리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었다.
이병천 박사는 “오리나무 역시 물 많은 곳에 서식하는 식물이지만, 오리나무로 인해 수분 증발 작용이 크게 발생해 습지의 육화현상(습지가 제 기능을 잃고 딱딱한 땅으로 변하는 현상)을 부추겨요. 일반적인 산과 들에 오리나무가 있으면 ‘여기가 과거에 습지였구나’라고 결론지을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 이병천 박사는 습지가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오리나무와 소나무 침범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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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오리나무의 수령을 보면 습지 침범 시기를 가름할 수 있죠. 대부분 4~5년생, 7~8년생 등으로 최근 10년 사이 들어온거죠. 그동안 잘 보존돼 온 습지가 최근에 이렇게 변했다면 천성산 터널 개통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정부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네요”라고 말했다.
또 육지식물인 소나무 침범과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물이끼 등도 육화의 증거다.
정족산 무제치늪 역시 육화 진행
“대규모 습지 복원사업 필요해”
그렇다면 무제치늪은 어떨까? 1999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 2007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울산 정족산 무제치늪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제치늪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오리나무, 소나무 그리고 육지식물인 억새 등도 다량 서식하고 있었다. 단지 차이점은 제초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 2007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울산 정족산 무제치늪 역시 육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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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무제치늪은 얼마 전 방문했었는데, 군데군데 오리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보이지 않네요. 습지보호지역이라 환경부나 울산시에서 관리를 하는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병천 박사는 “천성산과 정족산을 탐방하며 느낀 점이 정말 다양한 식생과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규모 습지들에서 육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네요. 최근 개발로 인한 현상인지, 정확한 인과관계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하루빨리 복원과 복구를 진행해 자연적 보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율 스님은 ‘도롱뇽 소송’을 언급하며 소외를 밝혔다.
“당시 천성산에 너무나 많이 서식하고 있는 도농룡의 존재를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언급조차 안하니 재조사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그게 마치 ‘도농룡을 살려달라’는 감성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져 국책사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답답한 환경론자가 돼 버린거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 주세요. 왜곡하거나 살을 더 붙이지도 말고 눈으로 본 그대로를 말이죠”
↑↑ 늪지 전체를 뒤덮고 있어야 할 물이끼가 일부 물고랑에서만 겨우 서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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