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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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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승부뿐 아니라
프로정신과 투혼이 만나
진정한 인간승리 드라마 돼
지방정치 임기 개시 즈음해
멸사봉공의 투혼 기대한다
스포츠 단일종목 대회로 전 세계를 잠 못 들게 하는 2014 월드컵이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나라가 200개가 넘는데 대륙별로 지역 예선을 거쳐 32개 나라가 본선에 오른다. 4년마다 개최되는 대회가 올해는 브라질에서 열렸다.
우리나라도 아시아 대표로 일본, 이란과 함께 본선에 올랐다. 아쉽게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지만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 등 세계 강호와 대결을 펼친 날 밤에는 많은 국민이 잠을 설치면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마다 자국민의 열화같은 성원을 끌어내며 흡사 전쟁과도 같은 결전을 펼친 끝에 이제 준결승 진출팀이 가려졌다. 전통의 강호들이 예상대로 4강에 진출했다.
브라질과 독일,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가 각각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됐다. 유럽과 남미 각각 2팀씩 맞붙게 됨으로써 최고의 대진이 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최 대륙에 속한 팀이 우승을 차지했던 전례가 있는지라 이번에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우승컵이 돌아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경기 승패와는 별개로 선수들의 투혼이 빛난 경기를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선진축구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일부 국가 대표선수들이 강팀을 만나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주최국 브라질을 맞아 16강전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였지만 승부차기 끝에 아깝게 패한 칠레, 역시 8강에서 네덜란드와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석패한 코스타리카와 열세를 딛고 강호 벨기에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알제리 등 패배하고도 국민적인 성원을 불러온 사례가 그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와 일본은 전적도 1무 2패로 부진했지만 치열한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해 비난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국민 가슴속에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동양의 작은 용사들이 그라운드에서 야생마처럼 종횡무진하는 모습은 대부분 구기 종목에서 서양의 신체적인 우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거를 단번에 뒤집는 통쾌한 장면이었다.
히딩크 감독의 특별한 용병술과 주최국 이점이 작용했다지만 잔디 위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국민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세계 4강 신화는 직접 참가한 선수들 위상도 한껏 높여줬지만 그 못지않게 우리나라 브랜드 가치도 크게 올렸다.
유럽 정상급 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연이은 월드컵 예선에서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면서 우리 눈높이는 높아갔다.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본선에서 더욱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도 그만큼 팽배해졌다.
더구나 12년 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주역인 홍명보가 감독으로 출전하는 대회가 아닌가. 대표팀 맏형 박지성이 빠지긴 했지만 영국 프리미어 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 등 쟁쟁한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총출동했으니 그런 기대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첫 경기인 러시아와 무승부가 자만심을 키운 탓일까 알제리와 벨기에전에서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수세를 거듭한 끝에 참패하고 말았다.
선수단이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는 과거와 같은 환영 물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엿을 던지거나 비난 현수막을 펼치는 등 눈살을 찌푸릴 일이 벌어졌다. 홍명보 감독도 웃음기 잃은 모습으로 비난의 화살을 혼자 맞았다. 일부 팬의 지나친 대응은 수긍할 수 없지만 대표팀을 맞는 국민의 실망감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승리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치열한 프로정신으로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발휘해 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기술이 부족하면 체력을, 체력이 달리면 근성으로 버티는 진정한 승부사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중앙아메리카의 소국 코스타리카가 보여준 8강 등극 신화는 2002년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줬다. 선수 면면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눈부신 투혼을 보여준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었다.
한 달 전 지역 정가를 달궜던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시장과 시ㆍ도의원들이 임무를 시작했다. 그들은 시민이 뽑은 일종의 대표선수다. 그들이 선거 전까지 초심을 잊고 구태의연한 자세로 민의를 저버려 비난의 화살을 맞을지, 아니면 환골탈태의 자세로 혁신과 멸사봉공의 투혼을 발휘해 진정한 지방자치의 대사로 환영받을지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