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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송 스님 시인 통도사 극락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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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거래생멸(去來生滅, 오고 갊, 나고 죽는 것)이 없는 것이지만 세상 인연이 다해가는 모양이니 무상(無常)이 더욱 느껴진다. 올해 병오년에서 무진년까지는 39년간인데 그동안 부고(訃告)를 받은 것이 대략 640여명이나 되니 이 많은 사람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일거(一去)에 무소식(無消息)이로구나.
옛 부처도 이렇게 가고
지금 부처도 이렇게 가니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청산(靑山)은 우뚝 섰고 녹수(綠水)는 흘러가네
어떤 것이 그르며 어떤 것이 옳은가
쯧 쯧
야반삼경에 촛불 춤추는 것을 보아라
1966년 봄 수의(壽衣, 염할 때 입히는 옷)를 짓던 날 노사의 일지(日誌) 가운데 있는 감상평이다.
“여기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대문 밖에 나서면 거기는 돌도 많고 물도 많으니 잘들 가라!”
‘이조말(李朝末) 거목(巨木) 경허(鏡虛) 이후 자신의 목소리로 사자후(獅子吼)해 설법도생(說法度生, 진리를 설해 궁극적 지혜를 얻게 함)하시던 노사의 일면’이라고 극락 선원장 고원 화상은 전한다.
제석천왕은 이 세계를 뒤덮는 그물을 가지고 있다. 이 보배 그물의 각 그물코에는 영롱한 구슬이 있어 서로 조응(照應,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말과 글의 앞 뒤 따위가 서로 일치해 잘 어울림)한다. 이 제석망(帝釋網, Ind ranet, 제석궁에 있는 보배 그물)은 현대에 와서야 이 표현이 현 물질문명의 이기와 너무 흡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넓은 천지, 광활한 세계에 좀팽이처럼 살지 말고 멋지게 주인공으로 살라는 말씀인데 맛깔스러운 풍류가 깃들어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깨달음을 얻습니까?”
“보살은 인욕으로서 위없이 크고 평등한 큰 깨달음을 성취한다”
세존과 그의 알뜰한 제자 수보리와의 문답이다.
위없이 높고 큰 깨달음은 참는 것, 즉 인욕으로 성취한다고 성인은 설하신다. 거기에 극적인 세존 자신의 과거 생을 말씀하시는데 인욕이 그냥 참는 것이 아님을 결과적으로 단언한다.
‘수보리여! 또 여래는 과거 오백 생 동안 인욕선인이었던 그때에도 자아가 있다는 생각이 없었고, 개별적인 자신(個我)이 있다는 생각도 없었고, 중생이 있다는 생각도 없었고, 영혼이 있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관념을 떠나 위없이 높고 큰 깨달음을 내야 한다. 형상에 집착 없이 마음을 내야 하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 마음에 집착이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삶이 아니다’
세존께서 저 무시무시한 가리왕에게 온몸을 찢기고 마디마디 잘리면서도 일체의 나쁜 생각을 내지 않았기에 위없이 높고 큰 깨달음을 얻은 바 있다고 고백한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평등해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위없이 높고 큰 깨달음이다. 그리해서 종래에는 ‘자아도 없고, 개별적인 자신(個我)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혼도 없이 온갖 착한 법을 닦아’ 성취하는 것이다. 무상(無相)이 실상(實相)임을 설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