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57)이 10여년만에 천성산을 찾았다. 지율 스님은 2003년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도롱뇽 소송’과 ‘단식농성’으로 ‘천성산 지킴이’, ‘생태계 어머니’ 등으로 불리고 있는 환경운동가다.
그는 지난 1일 천성산 터널 개통 이후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천성산에 다시 올랐다. 본지와 산림생태학 이병천 박사도 함께 동행했다. 2회에 걸쳐 동행기를 심층 보도한다. <편집자 주>
↑↑ 밀밭늪 입구는 일반 차량 두 대가 거뜬히 지나다닐 정도의 임도가 만들어져 있다. |
ⓒ |
2. 생태계 파괴 부추기는 임도
‘임도(林道)’는 나무 등을 운반하거나 산림 관리를 위해 산 속에 만든 차도다. 때문에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임도 개설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 차량 진입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임도폭을 넓히거나 아스콘을 메우는 행위는 자연파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이미 개설된 임도를 방치해 놓는 것은 자연을 두 번 죽이는 행위다.
천성산 곳곳 산림 관리용 임도 개설
일반 승용차도 이용 가능한 차도 돼
해발 922m 천성산은 제1봉, 제2봉 두 곳의 정상이 있다. 천성산은 내륙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고 알려져 등산객에게 해맞이 명소로 유명하다. 문제는 등산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산 정상에서 해맞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등산을 하지 않고 차량을 이용해 산 정상까지 편하게 가고자 하는 시민을 위해 천성산 곳곳에 임도가 만들어졌다.
지율 스님 일행은 지난 1일 영산대학교 뒤편을 따라 천성산 제2봉에 오르며 임도 개설 현장을 확인했다. 임도가 잘 닦여 있었다. 밀밭늪 입구까지는 일반 차량도 전혀 무리 없이 오갈 수 있는 잘 정비된 임도였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둘러싸고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임도가 20km에 이를 것이라 추측했다.
지율 스님은 “2000년 즈음부터 천성산 곳곳에 임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 정도 규모로 개설되고 있는지 몰랐죠. 임산물 수송차량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왕복으로 차량 두 대는 거뜬히 지나갈 수 있는 폭에다 심지어 아스콘이 깔린 곳도 있더라구요”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 파헤쳐진 임도 곳곳에 차량 출입을 증명하는 타이어 자국이 발견됐다. |
ⓒ |
임도 곳곳 파헤쳐지고, 협곡 연출
사찰림까지 임도가 개설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내원사는 양산시에 복원을 요청했다. 2004년 무렵 아스콘은 걷어 내고 임도 양쪽으로 나무를 식재하는 등의 복원사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율 스님은 “식재했던 나무는 어디로 사라지고 길을 더 넓혀 놨네요. 철쭉군락지로 가는 길을 만든 모양인데, SUV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도록 돼 있네요. 천성산 제1봉은 말할 것도 없죠. 처음에는 정상에 있는 군부대 때문에 군사차량 정도만 이용하는 최소한의 임도였는데, 이제는 해맞이 행사 한다고 얼마나 길을 잘 닦아 놨는데요”라고 말했다.
↑↑ 울산시는 무제치늪 보호와 임도 복원 등을 위해 철제그물망을 만들어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
ⓒ |
이병천 박사는 “임도를 만들고 놓고 그대로 방치해 임도 곳곳이 파헤쳐진 것으로 보이네요. 문제는 이렇게 파헤쳐진 임도로 산악자전거나 오프로드 차량이 다니면서 훼손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차량 진입을 막아 하루빨리 복구를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파헤쳐진 임도 곳곳에서 타이어 자국이 발견됐다. 좁은 곳에서 유턴해 빠져나간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차량 출입을 통제한 무제치늪 방향 임도는 10여년만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
ⓒ |
5년 만에 복원돼 자연모습 되찾아
일행은 울산 정족산(해발 748m)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역시 임도가 개설돼 있었다. 하지만 무제치늪이 가까워지자 임도가 폐쇄됐다. 철제그물망을 세워 차량 출입을 전면 차단한 것이다. 철제그물망을 지나 무제치늪으로 향하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 모습이었다. 10여년만에 이 곳을 찾은 지율 스님도 복원된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율 스님은 “예전에 이곳도 잘 닦여진 임도였어요. 아마 무제치늪 복전 대책의 하나로 임도를 폐쇄한 것 같네요. 보세요. 나무도 풀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자라 있잖아요.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면 이렇게 스스로 생명을 되찾잖아요”라고 연신 감탄했다.
무제치늪을 지나 솥발산 공원묘지로 내려오는 것으로 천성산 생태탐방 일정을 마쳤다. 지율 스님은 ‘개발이 최선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자연 그대로 보존이 관광자원으로서 가치가 훨씬 높은 것 아니냐며 토로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원시림을 만들자는 게 아니예요. 산을 좋아하고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등산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거죠. ‘개발’ vs ‘자연보존’이라는 해답 없는 논쟁이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관광자원으로서 가치 있는 개발로 양산시민 스스로 천성산을 지켜나가자는 겁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