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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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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서 변산반도까지 거리는 320 km가 훨씬 넘었다. 처음 간 곳은 드라마 촬영 장소였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주말 밤이면 반드시 봐야 했던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한 곳이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관리가 되지 않은 폐가처럼 돼 있어 실망만 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실망하게 한 것 같아 체면이 서지 않아 뭔가 만회를 해야겠다는 의욕에 우리나라 지도가 바뀐 곳을 보여주겠다고 새만금방조제로 내달렸다.
33.9km 바다 위로 난 방조제를 달리려 했더니 아이들은 배고픈데 달리기만 한다고 또 불평이다. 그래, 뭘 먹고 싶은지 물었더니 피자, 콜라, 햄버거 등등이다. 이 문제로 부자는 또 한참 논쟁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버지들이 이겼다. 여행을 오면 그 고장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논리가 승리한 결과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적벽강과 채석강을 갔는데 ‘비슷한 곳을 두 군데나 둘러봐야 하는가’로 아이들과 또 다퉜다. 새벽에 출발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차 안에서 잘만하면 내려서 어디를 둘러보자고 하는 게 이런 것이 여행이냐고 야단이다. 그래서 내놓은 타협안이 끝말잇기를 해서 아빠들이 지면 통닭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통닭이 아니라 치킨이란다. 끝말잇기에서 지고 통닭이 아닌 치킨을 저녁에는 사주기로 하고서야 누에고치 박물관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격포항 수산시장에서 조개를 사서 숙소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와 조우해서 바다를 바라보며 고기를 먹었다. 한 잔 술에 아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아이들에게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엄마 간섭에 벗어나는 게 좋단다.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단다. 평소 아빠에 관해 물었더니 어떤 결정을 할 때 늘 의견을 묻기만 하고 결정은 결국 아빠가 한다고 말한다. 술에 취해 못 들은 척하면서 아이들의 솔직함에 귀 기울이는 밤이었다.
다음 날은 내소사에 갔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아이들이 전나무처럼 잘 어우러져 숲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지나 곰소염전을 둘러봤다. 비가 와서 일하는 사람이 없는 텅 빈 곳이라 소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소금을 만드는 곳을 직접 봤다는 것이 중요했다.
돌아오며 오랫동안 생각했다. 누에고치 박물관에서 누에가 돼가는 과정과 염전을 보며 소금과 같이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서로가 어우러져야 숲이 된다는 걸. 아이들은 한참 지나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보다 점점 커갈수록 아빠와 멀어져 가는 걸 아이들은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도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해 볼만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