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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조상의 여름나기를 배우고 싶다..
오피니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조상의 여름나기를 배우고 싶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7/29 09:54 수정 2014.07.29 09:52



 
↑↑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가뜩이나 짜증나는 여름에
화를 더하는 바깥 소식들
조상들 여름나기 비법을
오늘에 되새겨 행하려면
안분자족과 자기수양으로
사회 안정 기초 만들어야

언제부턴가 살림살이의 편리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름을 보내기가 더 짜증스러워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현대인의 인내심이 오그라들었다는 건지 아니면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일기가 불순하게 되고 과거에는 없던 무더위와 장마가 불쾌지수를 높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인간의 어울림이라 할 삶마저도 순리로 풀어나가기보다는 자가당착의 해괴한 논리가 판을 치고 대형사건마다 음모론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많은 국민이 불신과 울화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참에 사회 지도층의 도덕심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그들이 누리는 명예와 부에 걸맞은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 초점이다.

프랑스 격언에서 출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초기 로마 시대 왕과 귀족이 보인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용어지만, 실제로 가장 뚜렷한 사례로 기억될 사건이 14세기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 있었다.

‘깔레의 시민들’이라는 로댕의 조각상으로도 유명한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 때 일이다. 프랑스 북부 해안도시인 깔레는 영국의 집중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다 결국은 영국 에드워드 3세에게 패해 고립된다. 영국 왕은 깔레 시민 모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대신 해괴한 제안을 한다. 깔레 시민을 대신해 스스로 죽을 사람 6명을 요구한 것이다.

굴욕을 안겨주려고 내세운 제안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깔레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도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티슈드가 먼저 자원해 나서자 시장이 뒤를 따랐고 또다시 부유한 상인과 그의 아들이 나서자 다른 시민 3명이 자원한 것이다. 7명의 깔레 시민이 영국 왕의 지시에 따라 목에 밧줄을 매고 죽음을 청했지만 1명을 제외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외스티슈드는 다음날 처형장에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자고 한다. 다음날 외스티슈드가 나타나지 않자 의아해하면서 그의 집을 찾은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를 발견했다. 순교자 사기를 떨어뜨릴 것을 걱정해 먼저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안 영국 왕비가 왕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건의했고 이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최근 우리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시작된 애통한 비극을 접하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시민의식 실종과 부조리의 연결고리에 대한 실상을 생생하게 알게 됐다. 그와 함께 정부가 수행해야 할 사회 안전망 구성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실감하게 됐다. 더욱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사후 조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무능함, 당리당략이었다.

사고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특별법 제정에 대해 타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는 국회의원 재ㆍ보선을 앞두고 세월호 사건마저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라고 다를 바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부구조 개편까지 포함한 해결책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고, 검찰과 경찰은 ‘밥그릇 싸움’에 치우친 탓인지 유병언 일가의 검거를 둘러싸고 엇박자를 내면서 국민을 오히려 의혹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조그만 국토에 한쪽에는 국지성 호우와 천둥ㆍ번개가 몰아치고 있는가 하면 한쪽에는 한밤중 기온이 25℃를 넘는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제 곧 장마가 끝난다고 하지만 즐거운 여름휴가를 맞은 시민의 마음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불안정한 사회 현상에도 원인이 있지만, IMF 사태 이후 최악의 소비 위축을 보이고 있는 실물경기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에서는 서민 주머니를 늘리는 정책을 모색해 내수를 촉진해보려고 하지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그들의 소비 심리가 금방 풀어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 모두가 상식적인 생활자세로 돌아가 건전한 소비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 조상은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도 마음의 양식을 튼실하게 하는 여름나기 비법을 알고 실천해 왔다. 호화판 해외여행이나 과소비 피서가 아니라, 평소 잘하지 못했던 가족 간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책을 읽으며 심신을 닦는 ‘선비의 피서’를 실천했다는 말이다. 안분자족(安分自足)은 스스로를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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