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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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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애비 기일이라고
여편네와 새끼들을 끼고 아들이 왔다
해질녘 노을이 바람처럼 펄럭이는 굽이진 산길을 넘어
먼 길을 달려 와 상을 차린다
아들은 아직도 그 옛날 허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빈 들판을 가지고 있다
못난 애비 에미 탓에
어린 날 보리밥 입으로 우겨 넣으면서 울던 그 울음
감꽃처럼 하얗게 돋아나는 부스럼덩이 슬픔을
애비의 술안주로 차려놓고 싶어 먼 길을 달려왔다
산길을 흔들흔들 넘어오는 지 애비의 술잔에
술 한 잔 따르고 싶어
휑한 바다를 안고 출렁이며 왔을 게다
애썼다, 얘야. 색시 얻고 새끼들 맹글면
지 울타리 키우기도 불보듯 뻔헌 것인디
뼈만 남은 지 애비 무덤도 짐 되는 일이 되는 것인디
잊지 않고 달려와 줘 고맙다
마음 밖에 둘 일은 아니다만
나 죽거들랑 기일 땐 오지 말거라
기일이 되거들랑
아버지 어머니만 조용히 조용히 불러다오
살다 떠나는 일
너를 떠나지 못해 애달픈 일일 뿐이란다
조찬용 시인
전북 부안 변산 출신. 한국시인협회 회원. 전, <시와 사람> 회장. 현, 수원 영복여중 국어교사. 시집 『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끓인다』(2000), 『숲에 들면 나오지 못하는 새』(2003),『그러니까, 당신도 살아』(2014)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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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어머니의 독백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를 통해 아들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시 속 대상이 시인 자신이라고 읽히는 것일까.
‘어린 날 보리밥 입으로 우겨 넣으면서 울던’, ‘부스럼덩이 슬픔을’ 가진, ‘지 애비의 술 잔에/ 술 한 잔 따르고 싶어/ 휑한 바다를 안고’ 온 아들의 모습을 나는 자꾸 시인과 겹쳐 읽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나 죽거들랑 기일 땐 오지 말거라 /기일이 되거들랑 /아버지 어머니만 조용히 조용히 불러다오’라는 목소리를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어떤 장면을 연상해 읽고 있다.
어쩌면 나는 가장 나쁜 방식으로 시를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상과 시인, 어머니와 내 기억을 겹쳐 읽음으로써 작품 속 어머니와 아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그 덕에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시가 있다. 그의 시가 대개 그러하다. 시 속 풍경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아들은 이 시대 중년의 피로와 고단함이며, 그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 또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 그 자체 아닌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머니의 기일, 그래서인지 더욱 가슴 저릿하게 다가오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