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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송 스님 시인 통도사 극락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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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싯다르타에게도 유사한 시련이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태자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린 고타마는 어머니의 동생 마하 파자파티 슬하에서 성장한다.
어느 날 태자 싯다르타는 성문 밖에서 세상의 온갖 욕심을 떠난 평온한 출가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그들과 같이 될 것을 서원한다. 그리고 그 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라고 그의 제자에게 밝혔다.
용국은 스승 성해 화상으로부터 정석(靖錫)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정석아! 정석아!”
정석은 그의 자애로운 스승으로부터 매일 이 이름으로 부름을 받는다. 성해 화상은 엄격하면서도 옹골찬 대쪽 기질의 선사이다. 안광(眼光)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좌중을 압도해 그와 대면한 사람은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마주한 듯 주눅이 들곤 한다. 그 성해 화상 밑에서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는다. 이를 득도(得度)라 하는데 ‘마음의 길을 얻는다’는 뜻이다.
지금은 무풍한송(舞風寒松)길로 불리는 서늘한 물소리를 밟으며 연도(沿道, 큰길 가장자리)에 제멋대로 온몸을 꼬불꼬불 뒤틀며 빽빽이 서 있는 솔숲 사이를 걸으면 아무리 느긋하게 걸어도 일주문(一柱門)에서 경내 불이문(不二門)까지 30분이 채 안 걸린다. 군데군데 천 년을 넘게 오가는 사람을 지켜봤을 푸른 이끼로 온몸을 뒤덮은 바위도 이제는 의젓한 도통 군자의 모습이다.
정성이 깃들면 마음은 더 창연해지는 것인가. 솔바람이 그러하고 하늘이 또한 그러하다. 물길은 또 얼마나 많은 빛의 시간을 지나왔을까. 바람은 또 얼마나 많은 번뇌를 쓸어갔을까. 춤추는 바람! 하늘은 고통과 기쁨을 버무려 사람의 꽃을 피우는 조화옹이다.
정석은 푸른 바위 틈새에 덕지덕지 붙은 부처손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봤다. 넓게 퍼진 가지에 주렁주렁 자식이 딸린 아비처럼 부처손은 어둡고 쓸쓸해 보였다. 사람의 생각은 끝없이 피어나는 구름 같아서 언젠가는 비가 될 것이기에 정석은 의연히 금강문(金剛門)을 지나 통도사에 발을 내디뎠다.
정석은 일주문을 들어서며 아득히 오랜 생의 수업(修業)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에 들떠있었다. 구도의 환희로운 삶과 정든 친구를 멀리 떠나온 심경이 교차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장한 결의가 솟아올랐다. 마음 구석구석 깔리는 적막을 느끼며 안갯속을 걸어갔다. 안갯속에는 안개만 있는 게 아니므로 시나브로 봄비에 젖어 흐르는 풀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초록은 구름이었다. 살빛을 감춘 초록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극락 선원에서 용국은 생애 최초의 스승을 뵈었다. 이제 극락은 청춘의 고뇌가 바쳐진 젊은 수행자 정석의 마음을 먹고 자라는 꽃이 될 것이었다. 아니 새벽 찬바람에 깨어나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선사의 소리 없는 함성이 될 것이었다.
고타마를 위시한 대선사의 출가 기연(機緣)은 대부분 엇비슷한 데가 있는데 이 또한 지중한 인연의 신비로운 이야기다.
경허문하에는 세 달이 있다고 전해진다
만공은 허공에 가득한 달처럼 무애 자재한 삶을 살았다
혜월은 바람의 화신처럼 지혜의 씨를 뿌렸다
수월은 숨겨진 달처럼 아름다웠다
우주는 그만큼 넉넉한 복락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