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
ⓒ |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많은 답은 ‘날마다 반성하면서 살겠다’였다. 다음이 ‘용기 있게 살겠다’는 것이었고 세 번째로 많은 대답은 ‘죽은 후에도 남을 만한 일을 하겠다’였다. 세상을 살면서 보람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되돌아보는 아쉬움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들 대답은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 준다. 어쩌면 우리는 후회 없는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욕구는 지금의 나를 채우기에만 바쁘다. 진정 내 인생을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이 나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일, 사랑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 1917~1963)는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4가지 역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첫째,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둘째, 당신은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셋째, 당신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았는가? 넷째, 당신은 무엇에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 만약에 우리가 죽음 앞에 섰다면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는 ‘알버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두 사람이 있다. 먼저 알버트 까뮈(Albert Camus, 1913~1960)는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반항적인 인간’, ‘오해’, ‘계엄령’ 등 수준 높은 작품을 썼고 1957년에는 ‘전락’이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다음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다. 이 사람은 신학자요, 철학자요, 음악가요, 의사였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인 가봉에 건너가 원시림 속에 병원을 세우고 흑인의 벗이 돼 사랑과 헌신의 봉사로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상에 남긴 것은 서로 다르다. 까뮈는 노벨 문학상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좋은 별장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여생을 즐기며 편안히 살던 중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 상금으로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과 수용소를 세우고 그곳에서 일생을 봉사했다.
두 사람은 지금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별장과 병원은 아직도 남아있다. 까뮈의 명성과 재능에 비해 그가 남긴 별장은 어쩐지 아쉬움과 애석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 슈바이처가 남긴 병원과 행적은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링컨은 평소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 뒤에 있을 평가를 이렇게 기대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잡초는 뽑고, 꽃은 심다 간 사람이다”
내 삶이 끝나는 날, 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