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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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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업시간에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는 학생이 있었다. 자신이 희망하는 학과를 지원하게 된 동기를 적는 항목이었는데 고흐가 말한 ‘나는 그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내 꿈을 그린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이 말을 어떻게 인용하게 됐는지 물었더니 명언 집을 보다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한다. 고흐가 이 말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 알면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올 것 같으니 고흐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는 권유를 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의 삶 중 어떤 상황 속에서 한 말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과 생활하다 보면 학생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다가 대화가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학생이 있다.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마다 이 학생을 깨워 수업에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얼마 뒤 복도에서 그 학생을 만나 이유를 물었더니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사연을 알게 됐다. 집안 사정의 어려움으로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수업시간에 자게 된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며 다른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수업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다 보니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한 진정한 만남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누군가가 연속극인 학교생활을 단막극처럼 보고 말하든가, 정지된 하나의 장면만 보며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면 힘이 빠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옳지 않음을 알게 되는 사례는 많다.
일찍 일어나 일찍 학교에 가서 자습하고 밤늦도록 공부하는 것은 학생에게는 당연하다고 어른은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 생각에 다 동의하지는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공부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억압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만나 대화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입학이나 취직과 관련지어 강변하더라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진 게 오래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해보지만 아이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배경을 잘 모르는 것이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 아닐까.
교사란 ‘사이’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정과 학교 ‘사이의 존재’ 말이다. 가정 배경과 학교의 교육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 안내하는 것이 교사다. 사회에서도 교사를 이해하기 위해 ‘사이의 존재’라는 배경에서 교사를 바라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