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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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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생활 쉽지 않고
대표자, 사업비리 근절해야만
건전한 주거문화 가능해
신기주공의 선거사무 위탁
공명선거 의지 보여준 일
아파트는 도시의 상징이다. 1970년을 전후해 부족한 대지면적을 해결하기 위해 5층 규모 저층 아파트가 지어질 때만 해도 저소득층 또는 이재민을 위한 공동주택 개념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서울 강남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열풍이 몰아치면서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고층, 최첨단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발전하게 됐다.
양산 아파트 변천사도 시기만 다소 뒤처질 뿐 이와 궤를 같이한다. 1970년대 말 당시 중심이었던 북부동 간선도로변 주택이 철거되고 ‘소도읍 가꾸기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도로 확ㆍ포장과 4층 이상 슬라브 건물이 들어섰다. 이후 구획정리가 끝난 북부동 옛 경찰서 주변에 5층짜리 아파트가 몇 동 들어선 것이 시작이었다.
1980년대는 양산이 농촌에서 산업도시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는데, 이에 걸맞게 10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처음으로 들어서게 됐다. 1989년 준공한 신기동 해강아파트는 12층 규모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최초 공동주택이었다. 당시 어린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처음 본지라 매일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데려와 몇 번씩 오르내리는 광경이 목격되곤 했다.
1990년대 이후 놀랄 만한 속도로 아파트가 늘어갔다. 도심은 물론 면지역 변두리까지 야산과 논밭을 없앤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다. 양산ㆍ물금 신도시와 서창, 평산 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택지에 엄청난 물량의 아파트가 건설됐으며 이제는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시 분포가 완성됐다. 물금 신도시 한복판과 덕계동 중심에 상설 주택 홍보관 즉,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와 함께 시민 주거문화가 변화를 겪었다. 과거 자연적으로 형성된 집단거주 형태인 마을 단위로 살아왔던 주민에게 1천 세대가 넘기도 하는 공동주택에서 생활은 말 그대로 생경한 것이었다. 마당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과 ‘숟가락, 몽둥이가 몇 개나 있는지’ 다 알고 있는 허물없는 이웃, 경조사를 당하면 당연한 듯 품앗이를 생각해 온 전통적인 근린사상에 젖어 있었던 주민이었다.
하지만 도시 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외부 유입인구만큼이나 이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공동주택생활의 어려움과 성가심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층간 소음 문제, 애완동물의 민폐, 쓰레기 분리수거 불이행, 주차장 다툼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적 질서 문제가 대두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부조리가 공동주택 대표자 그룹의 비리와 전횡이었다. 아파트라는 것이 수명이 있는 건축물인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와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나오게 돼 있다. 낡은 관을 교체한다든지 지저분한 외벽을 도색한다든지 도시가스를 일괄 추진한다든지 하는 주민부담사업이 시행됐고, 하다못해 물탱크를 청소하는 것도 업체를 정해서 도급해야 할 만큼 규모가 달라진 것이다.
또 관리사무에서 비롯되는 크고 작은 이권 사업도 비리가 개입될 소지가 많았다. 입주세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기금 규모가 커졌는데 이를 둘러싸고 대표자회의나 관리사무소 측과 입주민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끝내는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속출했다. 하긴 이런 문제는 양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현상이기도 했다.
도시화 초기 공통된 문제이기도 했던 공동주택 사업비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정부에서도 공동주택 사업비리에 근절대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입주민 사이에서는 아예 대표자 선출부터 공정하게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업자들과 결탁한 전례가 있는 대표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다시 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오게 됐다.
신기동에 있는 신기주공아파트는 18개 동에 2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주거단지다. 한때 사업비리와 대표자 전횡 등으로 분쟁이 지속했던 아픔이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2년 전 아파트 대표자 선거 관리업무를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맡겨 치렀다. 공정하고 적법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비리 척결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주공아파트는 올해도 동 대표와 입주민 대표 선거의 투ㆍ개표 업무를 또다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기로 했다. 외부기관에 맡기는 것이 능사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투명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