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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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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서며 아들에게 지겨웠냐고 물었더니 줄거리를 알고 보니 흥미롭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나 대사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더니 이순신이 왜장 구루시마의 목을 단칼에 베는 장면이란다. 그리고 아빠는 어땠냐고 묻는다. 나는 수많은 적 앞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이순신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 집 둘째는 학교 관악부에서 심벌즈를 치는데 대회에 나갈 때면 실수할까 봐 전날 밤에는 잠도 잘 못 자고 힘들어했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전체가 잘못될까 두려워하고 있을 때 지도 교사가 “심벌즈는 무거운 악기라 들고 있기도 힘드니 다치지만 말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다치지만 말자’고 생각하며 연주에 몰입하니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개학하고 수시모집에 응시하기 위해 아이들과 상담을 해 보니 많은 아이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계속 묻는 것이 이 대학, 이 학과에 가면 취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뭔가 보장된 미래를 찾으려고 하니 선택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의 범위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에 지금 여기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담임이 뭔가 분명한 답을 해주리라 믿었던 기대에서 벗어났다고 실망하는 눈치다. 그래서 며칠 전 아내가 읽어보겠다고 산 진로지도와 관련된 책인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라는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책 제목을 이용해 “가고 싶은 학과를 찾아, 취직할 수 있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가고 싶은 학과를 말한다.
자습시간 때 반에서 가장 성실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데 최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아이는 “선생님, 이번 모의고사 잘못 치면 어떡해요? 지난 시험보다 더 떨어지면 안 되는데 걱정이에요. 어쩌죠?”라며 계속 걱정했다. 그래서 “괜찮아, 늘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잘 안 될 수도 있는 걸 인정하면 돼.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했는가만 생각해”라고 어깨를 두드려줬다.
‘잘못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에 어떤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너 이렇게 해서 나중에 뭐가 될래?’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결국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란 말을 반복한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거듭했다.
누군가 한국사회는 패자부활전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패를 딛고 일어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오기 어렵단다. 그렇다면 어른이 ‘실패해도 괜찮아, 또 해보면 되지’라는 말로 여유를 가지고 거듭 노력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면 어떨까. 조급함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한다’를 ‘천천히 해. 계속 하다 보면 잘 될 거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