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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희 천성산숲길보존회 사무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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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 뒤에 있는 장산에 오를 준비를 한다. 배낭에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고 초콜릿도 몇 개 챙겨서 오른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한낮 햇살이 후덥지근하다. 그래서 장산 입구 계곡에는 어린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큰 돌계단이 정리된 곳으로 시원한 계곡 물이 층층이 흘러내린다.
나는 여러 갈래 길 가운데 제일 좁은 길을 선택했다. 큰길에서는 많은 산행인을 만나서 외롭지는 않겠지만 좁은 길은 대신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자연과 더 밀착되는 느낌이다. 좁은 길에서는 풀과 나뭇가지들이 내 옷깃을 스친다. 그럴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듣기 좋은 소리 맛이 좁은 오솔길을 선택하는 매력이다.
장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여러 갈래 길에 서면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요즘은 표지판에 길 이름도 참 예쁘다. 길 특징을 잘 표현해 주고 재미있는 길도 많아 표지판을 보고 선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기 표지판에 적힌 장산너덜길, 억새밭길, 중봉위 갈림길 등 모두 다 가보고 싶은 길이지만 나는 정상을 향한다.
중턱쯤 올랐을 때 처음 보는 큰 바위가 우뚝 솟은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얼른 가 봤다. 안내 표지판에는 선바위 장군 암이라고 적혀 있고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라고 한다. 조선 시대 때 우동, 중동, 좌동, 재송동 주민이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높이가 11m면 작은 바위는 아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문화재라고 하면서도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주위에는 무속인이 올린 막걸리와 과자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이것 또한 부산시가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야 할 유산이다. 양산의 천성산도 명산이다. 원효대사가 화엄벌에서 천명의 성인을 가르치고 배출했다는 데서 천성산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곳을 우리는 더 보존하면서 사람들과 공유하며 즐길 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천성산 숲길보존회에서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양산시민과 우리 후손들에게 알려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양산시민이라면 한 번은 가 봤을 천성산이지만 이 산에 깃든 이야기를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천성산은 소금강이라고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미타암 석아미타불입상은 통일 신라 시대 때 불상이다. 소라 모양 머리와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로 표현됐다.
어깨까지 내려온 귀는 여유롭고 편안한 인상을 주고 왼손은 무슨 소원이든 들어 주겠다는 여원인(與願印, 부처가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준다고 하는 의미)을 취했고, 오른손은 법을 깨달은 전륜 법인을 취했다.
미타암 뒤로 돌아서 걷다 보면 금수굴이 있다. 굴에 들어가 보면 바위에 혈맥이 흐르는 것도 신기하고 정동향을 향하고 있어 동틀 무렵이면 샘물이 온통 황금색을 뗘 금수굴이라 했다. 금수굴 입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삼 형제 바위가 보인다.
그중에 제일 앞에 자리한 바위는 부처님바위다. 남근석이라고도 하고 옥황상제 거시기 바위라고도 한다.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석간송이 웅장하고 위풍당당하게 자란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지 잔치바위, 혈수폭포, 적멸 굴, 기차바위 등 양산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관리하기보다 내버려두고 있는 실정이다.
찾아가는 길은 안내 표지판이 전혀 없어 현지인도 찾기 힘들다. 갈수록 역사를 잊고 지내는 우리는 과연 뿌리의 존귀함도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 귀한 역사의 장소를 등산만 하고 내려갈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알고 역사의 중요성을 한 번 더 되새기며 하산하길 바란다.
그래서 천성산 숲길보존회는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설화와 관련한 자료를 안내판에 게시해서 천성산을 찾는 이들에게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역사는 세월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잘 관리해서 다음 후손들에게 재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다.
우리 천성산을 나는 그렇게 지켜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