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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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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에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배 하나가 달려 있다오
안개가 걷히면서 바람 부는데
농익은 배 향기는 은은하게 울려온다오
종소리를 듣는 것 같아
배나무의 영혼은 먼 소리처럼 떤다오
오래전에 잊은 어떤 이의
눈썹 같은 게 차올라왔다오
허수경 시인
1964년 경상 진주 출생. 1987년 《실천문학》에 〈땡볕〉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실천문학, 1988),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 『내 영혼은 오래됐으나』(창작과비평사, 2001),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문학동네,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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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과수밭을 배경으로 오래전에 잊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시인의 그리움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푸른 그리움이 일렁이는 시 속으로 눈을 감고 들어가 봅니다. 안개 자욱한 어느 과수밭. 그리고 배나무의 매달린 농익은 배 하나, 조용히 향기로 습기를 머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안개에 섞이고 바람에 섞이겠지요. 향기를 ‘종소리’로 비유하는 기막힌 표현이 ‘은은하게’에 집약됩니다.
그리고 종소리의 떨림이 눈썹으로 이어집니다. 그 사람의 속눈썹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관계였다면 더 아련한 ‘잊음’이겠지요.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배의 싱그러움과 맞물려 시(詩)로서의 새로운 심미를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