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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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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라며 서로 눈빛을 던지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비어버린 자리들을 세며
서로들 식어가는 것이 보인다
가슴 밑바닥에서 부서지는 파도
저마다 물결 속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 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마음이 발치에서
물거품으로 부서져가는 것을 본다
점점 어두워오는 바다로 가는 물결
무슨 그리움이 저 허공 뒤에 숨어 있을까
김수영 시인
경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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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秀映) 시인은 우리에게 ‘풀’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남성시인 김수영(金洙暎)이 아닌 여성시인이다. 앞세대 큰 이름을 둔 선배의 후배이자 여성시인으로서 자신 이름을 고수한다는 건 버거운 노릇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기 이름을 필명으로 비켜가지 않고 당당히 내놓고 있다.
김 시인이 열어 보이는 세계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비현실적 세계를 동반한다. 이는 시인이 인식하는 세계가 부정적일 때 흔히 사용하는 시적 기법이다. 시에서 부정성은 관계의 단절, 소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목 ‘로빈슨 크루소’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빌린 것으로 보인다. ‘로빈슨 크루소’는 다니엘 디포 소설로,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표류하며 갖가지 곡절과 모험 끝에 2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시 중 ‘섬’에 ‘갇힌 한 사람’은 바로 그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존재로서, 절대고독의 공간 속에서 표류하는 시인 자신 모습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속 ‘우리’처럼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지만 ‘취해도 쉽게 제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서로 눈빛을 던지지만’ 그 관계는 단절돼 있다. 그대는 그렇지 않은가?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 마음은 어디든 흘러가고 싶으나, 어디도 흘러갈 수 없는 나는 외로움의 ‘가파른 절벽’만이 날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