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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셋째 아이
오피니언

[교단일기] 셋째 아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12/02 09:24 수정 2014.12.02 09:23



 
↑↑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정상적인 두 남녀가 만나 그들이 꿈꾸던 행복한 가정을 건설해 나가다가 이상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비정상적인 다섯째 아이를 낳은 후 그들의 가정이 파괴돼 가는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쩌면 가족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다. 소설 속 주인공 부부는 자식이 많은 전통적 가족을 이상적인 가정으로 생각하고 아이 다섯을 낳게 되는데 출산과 육아에 따른 현실적 문제는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소설처럼 셋 이상의 자녀를 양육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더욱이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이 보편화한 이후로도 자녀 두 명까지는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양육할 수 있지만 셋이 되면 정말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세 아이를 둔 부모다.

세 아이 중 위의 두 아이는 두 살 터울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닐 때 돈이 많이 들었다. 특히 공립 유치원이 많지 않아 사립 유치원을 보내야만 해서 힘들었다. 그러나 돈보다 더 힘들었던 건 맞벌이 부부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늘 불안하고 안쓰러웠지만, 아이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돌봐주시는 덕분에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출근을 했다.

두 아이는 자라서 첫째는 중학생이 되고, 둘째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 각자 자기 일을 알아서 할 나이가 됐다. 그 뒤 한참이나 지나서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정도 육아에서 벗어날 시기에 다시 앞의 과정을 겪어야 하니 여러 가지 기쁨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컸다. 무엇보다 노후를 편하게 지내셔야 할 어머니께서 또 육아를 위해 고생하실 생각을 하니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셋째 아이는 이른바 늦둥이로 중년이 다 돼 아이를 다시 낳는 경우에 속한다. 셋째를 낳고 반가운 소식은 누리 과정 예산을 통해서 아이 양육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져 준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을 해서 어느 정도 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도라면 국가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최근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대한 예산과 관련한 논란을 보면 심란하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달라 세부적인 정책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논쟁을 통해 합의된 일들만은 제대로 지켜지고 지속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이 문제는 돈과 관련된 문제만으로 한정되는 것 같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소설 ‘다섯째 아이’처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끔찍한 경험이 되게 해 가족을 해체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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