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고 특이한 모임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끈끈함이 있다. 모임에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만날 때마다 한 가지씩 목적을 달성한다. 내 지식과 정보를 자랑하러 갔다가, 내 삶을 고해성사하고 돌아온다. 그래서 더욱 매력 있는 모임이 바로 ‘양산문화수다방’이다.
양산문화수다방이 지난 17일 100회를 맞았다. 2012년 11월 20일 문을 열었고, 2년 1개월 7일만에 100회를 맞은 것이다. 100회를 기념해 웅상문화체육센터 1층 식당으로 수다꾼들을 불러 모아 내년 수다방을 준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수다방은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수다꾼을 초청해 강연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교양강좌가 아닌 참석자 모두가 소통하는 대화의 자리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노래교실 MC 한병찬 씨 등 유명인을 비롯해 평교사, 직장인, 사회운동가 등 평범한 우리 이웃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수다꾼으로 참여했다.
문화소통 공간 ‘양산문화수다방’
포장없는 수다가 감성 자극한다
수다방을 개설한 임재춘 한국청소년문화원장은 “수다는 ‘쓸데없이 지껄이며 말수가 많다’는 부정의 뉘앙스가 더 강한 단어다. 하지만 일상을 온갖 스트레스에 저당 잡힌 시대에서 수다는 한 줄의 시가 되고, 한 잔의 향긋한 커피가 될 때가 많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두터운 벽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리는 소통의 힘도 가졌다. 우리에게 수다방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양산문화수다방은 수다꾼을 통해 이웃 간 소통하는 공간이다. 매주 한차례 대표 수다꾼을 초청해 그 수다꾼이 풀어놓는 주제로 대화를 한다. 절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교양강좌가 아니다. 이웃집에 놀러 가듯 편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웃을 만나 문화활동을 하고 소통하는 시간이다.
양산에 문화소통 공간 마련해
부ㆍ울ㆍ경 유명 예술인 섭외
2012년 11월 20일 첫 수다꾼으로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부산국제영화제 뒷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래교실 MC 1인자인 한병창 씨, 국립부산국악원 이정필 예술감독, 극단 자갈치 홍순연 대표 등 부산ㆍ울산ㆍ경남에서 인지도 높은 문화예술인들이 양산문화수다방을 찾았다.
이들을 불러 모아 양산문화수다방을 개설한 사람은 임재춘 한국청소년문화원장이다. 그는 18년 동안 양산지역 청소년체험활동과 자원봉사활동을 주도한 청소년문화지킴이다. 임 원장은 “부산과 울산 사이에 끼여 지역정체성이 모호하고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양산지역에 수다를 통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두서없이 남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나브로 양산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출발했죠”라고 개설 배경을 설명했다.
평범한 우리 이웃도 수다꾼 참여
작은 카페에 20여명 모여 수다
하지만 꼭 유명인일 필요는 없었다. 평범한 우리 이웃들도 수다꾼으로 참여했다. 평교사, 일반 직장인, 개인사업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자신만의 특유의 수다를 풀었다. 때로는 교수가, 또 때로는 정치인이 수다꾼으로 나설 때도 있었다.
수다꾼 이동명(55, 평산동) 씨는 “처음에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수다꾼을 해도 되나’라고 생각했죠. 그냥 내가 살아온 얘기를 담담하게 했어요. 대장암 투병생활 중 군대 간 아들이 1급 장애진단을 받은 얘기였죠. 눈물을 보이시는 분도 있더군요. 제 얘기를 하면서 제가 치유를 받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수다꾼으로 직접 섭외하기 시작했어요. 약보다 더 잘 듣는 치료제가 있다고 하면서요”라고 말했다.
참석자는 통상 20~25명 남짓이다. 수다는 나 혼자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 주고, 웃어 주고, 박수쳐 주는 소통이기에 장소는 좁은 곳을 고집했다. 카페나 갤러리 혹은 수다꾼의 집도 수다방이 됐다. 웅상도 좋고, 서부양산도 상관없다. 어디든 사람들이 모이면 그 곳이 수다방이 됐다.
암환자를 위한 ‘자연처럼 사는 집’을 운영하는 황재수(59, 매곡동) 씨 역시 두 차례 수다꾼을 자청했다. 자신의 집에서 수다방을 열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15년간의 암투병 생활과 현재 웃음치료사, 미술심리치료사가 된 과정까지 수다로 풀어놓았다.
황 씨는 “암환자 최초로 웃음치료사가 됐죠. 힘들 때마다 더 크게 웃었고, 웃고 또 웃으니 힘든 것도 다 잊게 됐어요. 그 웃음을 양산문화수다방에서도 찾을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포장없는 수다’가 ‘포장없는 웃음’을 선물해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수다방에 중독되는 사람들 늘어
“포장없는 수다가 웃음 선물”
특이한 것은 일단 수다꾼으로 참여하거나 한번 수다방을 찾은 사람들은 수다방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재능으로 세 차례나 수다꾼으로 참여한 김종규(65, 부산 정관면) 씨는 “수다방의 매력은 수다꾼들이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다는 거예요. 수다꾼으로 수다방에 앉으면 마치 무엇에 홀린 듯 한결같이 눈물어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더군요. 한 수다꾼은 수다 중에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더니 눈물을 흘렸어요. 아마도 수다방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평범한 아빠의 신동키우기’라는 주제로 수다꾼이 됐던 추용준(50, 평산동) 씨는 “체육계는 텃새가 심해요. 자식을 배드민턴 선수로 키우기 위해서 ‘맹모삼천지교’처럼 이사를 거듭했죠. 수다방을 알고 나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산이라는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가 됐죠. 가마솥에 끊는 진국 같은 맛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수다방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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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수다로 탄생한 수다방”
[인터뷰] 임재춘 원장
수다방 탄생 배경은 우연한 술자리에서의 수다였다. 임재춘 원장이 부산예술대학교 강열우 교수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문화소통에 목마른 양산에 쉼터를 하나 만들어보자’며 안주 삼아 나눈 수다가 100회를 맞이한 양산문화수다방이 된 것이다.
“초기에는 힘들었죠. 수다꾼 섭외가 쉽지 않았거든요. 혼자 고군분투했죠.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이상하게 제 일이 없어지더군요. 수다꾼 섭외에서 시간과 장소 정하고, 다과 준비까지 수다방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알아서 챙기기 시작했어요. 한국청소년문화원 주최의 양산문화수다방이, 이제는 그냥 양산문화수다방이 됐어요. 수다방 만의 인적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셈이죠”
그는 앞으로 지역 청소년과 대학생도 많이 초청할 계획이다. 연륜에서 나오는 수다뿐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수다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원래 목표는 ‘100회까지만 해보자’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목표조차도 정하지 않으려구요. 우리 이웃에 수다꾼이 있는 한 수다방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누군가가 서부양산에서도 이런 수다방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흔쾌히 그러라고 했어요. 양산시민이 모여 문화소통을 하는 이런 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