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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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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건강이고요, 둘째는 사랑, 셋째는 재물, 넷째는 아름다움, 다섯째는 재능, 여섯째는 권력, 일곱째는 명예입니다”
그 말을 들은 지혜자가 충고했다.
“친구여, 그 모든 것을 다 갖췄더라도 마음의 평화, 그 한 가지가 없는 한 자네는 그 모든 것을 단 한 가지도 누릴 수 없다네”
아무리 건강해도, 재물과 아름다움이 넘쳐도, 능력이 있어도, 세상을 휘어잡는 권력이 있더라도 마음속에 평안함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 이유로 2천 년 전 예수님은 인생의 가장 귀한 선물인 평화를 선물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목자에게 나타난 천군 천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그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성탄 메시지다.
예수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에서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됐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라고 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우리는 무엇을 누릴 수 있는가?
첫째,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이방인이었고 외인이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과 기업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였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지게 했다.
원수가 되는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엡 2: 12-13).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은 찢어지고 거칠 것이 없게 됐다(눅 23: 45, 히 10: 19-20).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돼 자유롭게 지성소를 드나들 수 있게 됐다(벧전 2: 9). 구하면 주고, 두드리면 열어주고, 찾으면 만나주는 아버지가 됐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시다(요 14: 6).
둘째, 우리는 그분을 통해 다른 사람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하나님과 수직적 평화를 이루면 이웃과 수평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예수님은 먼 데 있는 자(유대인)와 가까이 있는 자(이방인)에게 평안을 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한 몸을 이뤄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엡 2: 16-19).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로 살았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교회를 형성하게 됐다.
셋째, 우리는 그분을 통해 우리 자신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하나님과 수직적 평화, 이웃과 수평적 평화를 이루면 성령으로 내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평안함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 27).
이 평안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인자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요 7: 37-39). 우리 안에 생수가 흘러넘쳐 충만하면 모자람이 없게 된다. 모자람이 없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