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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상 평산교회 담임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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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어린 시절 소년은 매일같이 나무에 와 놀았다. 소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숨바꼭질도 했으며 그늘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갔고 소년도 점점 나이가 들었다. 나무는 홀로 있을 때가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다. 나무는 “얘야, 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면서 즐겁게 지내자”고 말했다. 소년은 “나는 나무에 올라가 놀기에는 너무 컸어! 나는 돈이 필요해”라며 돈 버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다. “내 사과를 따다가 도시에 가서 팔아” 소년은 사과를 따서 갔고, 나무는 행복했다. 하지만 소년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돌아왔다. 나무는 소년에게 함께 놀자고 말했으나 가정을 필요로 했던 소년은 따뜻한 집을 마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 가지를 베어다가 집을 지으렴” 소년은 나뭇가지를 베어다가 집을 지으러 갔다. 떠나간 소년은 또 돌아오지 않았다.
소년이 마침내 돌아오자 나무는 기뻐서 “얘야, 와서 놀자”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었고 자신의 세계에 권태를 느꼈다. 그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배를 원했다. “내 줄기를 잘라다가 배를 만들렴” 소년은 나무줄기를 잘라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나갔다.
시간이 가고 소년은 노인이 돼 돌아왔다. 그는 너무 늙어 그네를 뛸 수도 없었고 부를 추구할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었다. 소년은 “이제 나는 조용히 앉아 쉴만한 곳만 있으면 돼”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앉아 쉬기에는 내 그루터기가 그만이야. 이리 와서 앉아 쉬어”라고 답했다. 소년은 시키는 대로 했고, 나무는 행복했다.>
우화에서처럼 우리는 소년부터 청년,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는 삶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능력과 지혜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들이 한두 사람뿐이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염려하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성취,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황혼녘에서 끝마무리를 잘하는 지혜를 생각해본다. 끝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성품을 잘 가꿔가야 한다. 겸손한 사람은 때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이 겸손이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아는 사람이다.
끝마무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겨울은 사계절의 끝과 같지만, 겨울 속에 봄의 씨앗이 담겨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은 한 해의 끝과 같지만, 연말 속에는 새로운 한 해의 씨앗이 담겨 있다. 끝마무리를 잘할 때 오히려 새로운 문이 열림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