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우순희 희망웅상 홍보분과 | ||
ⓒ |
“우체국에 가서 김치 부치고 방금 집에 왔다. 내일 오후쯤 도착한다더라. 먼저 담은 건 숨이 너무 죽어서 맛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먹고 다시 몇 포기 담가 보낸다. 맛있으라고 연근도 갈아 넣고 했는데 맛이 어떨런지…. 맛없어도 아쉬운 대로 먹어라”
“아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엄마의 전화를 끊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염치없는 막내딸은 고슬고슬하게 금방 지은 밥에 엄마표 김치를 얹어 먹을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군침을 삼켰다.
결혼 후 20여년 동안 해마다 시시때때로 담가 보내 주시는 김치를 먹으면서 이 순간까지도 내가 담가드리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할머니표 김치, 장모님표 김치를 최고로 여기는 가족들 입맛에 도전하는 것이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왜 할머니 댁에서 먹은 그 맛이 안 나지?’하고 밥상에서 퇴짜 맞는 음식도 여럿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고깃국, 갈치 찌개, 나물 반찬, 떡볶이,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굴국, 동태 찌개는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반찬 없다 하시며 마른 다시마 한 조각 툭 던져 넣고 채소와 된장을 조합해 뚝딱 끓여 주시는 뚝배기 된장찌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훌륭한 맛이다.
엄마는 한복, 양장을 손수 지으셨던 솜씨로 손자, 손녀가 안 입는 옷을 리폼해 상의를 반바지로, 하의를 상의로 만들어 입으시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손수 손자 교복을 줄 세워 다리시는 걸 즐기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뜨개질해주신 장갑, 조끼, 목도리, 가디건, 양말이 많았다. 실이 귀한 시절이라 구멍 난 아버지 뜨게 옷을 풀어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몇 날 몇 밤을 새워가며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지어주신 그것이 어렸을 때에는 싫증이 났었다. 친구들이 가진 알록달록한 색깔 예쁜 손가락 장갑과 목도리가 부러워서 일부러 땅바닥에 문질러 구멍을 내기도 했는데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다시 그걸 풀어서 똑같이 만들어 주셨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손녀에게 학 천 마리를 접어 “기도하면서 한 마리, 한 마리 접었어. 하루에 100마리씩 꼬박 열흘을 접으니 천마리가 되더라. 정성스럽게 접었으니 잘 될 거야. 열심히 해라” 하시는 엄마. 네잎 클로버를 찾아 들판을 누비고 예쁘게 말려 손자, 손녀 지갑에 넣어 주시며 “행운이 온단다. 지니고 다녀라” 하시는 엄마. 전화 드리면 매번 “고마워요” 하는 엄마. 다정다감하고 자상하고 정갈하고 매사에 정성을 기울이시는 엄마. 지금 감사하게도 곁에 계시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엄마, 을미년 새해가 밝았어요. 마흔 넘어 보신 늦둥이 막내딸도 어느덧 오십인가 봅니다. 무심한 세월이 엄마 나이에도 한 살을 얹었나 봅니다. 엄마가 계신 한해, 한해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새해, 새날을 엄마와 함께 맞이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