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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남 -1961년 생. 충남 연기군 출생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삽량문학회, 이팝시동인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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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성명남은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얼룩진 벽지’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얼룩진 벽지’는 1년 정도 어르신들 점심식사를 배달하며 혼자 사는 노인을 보고 쓴 시다. 부산시가 운영하던 무료 배식소에서 200인분 식판을 닦고 배식하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몸이 불편해서 급식소까지 못 오는 분에게는 밥과 반찬을 배달해 드렸다.
그때, 노인 방에서 본 곰팡이가 슨 얼룩진 벽지가 처연하더란다. 그러면서 저 벽이 무너지면 어르신은 어떡하지 하는 위기감을 느꼈고 이를 시로 썼다. 더불어 여럿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자원봉사하는 갸륵한 마음 씀씀이가 빚은 한편의 시, 그 시가 신춘문예 당선작이 됐다.
중학교 때 선생님 ‘문학에 소질이 있네’
그는 1961년, 지금의 세종시에서 태어났다. 그저 시골 소녀였던 그가 문학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때였다. 교내 백일장에서 어버이날을 주제로 쓴 글이 상을 받았는데 작고하신 홍성덕 선생님이 “너는 문학에 소질이 있네” 하시더란다. 그 말이 귀에 꽂쳤다. 아, 나는 글을 써야겠구나 했단다.
대전으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하루 한 권은 기본, 자신의 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였단다. 이때 가장 큰 즐거움이 읽은 책 목록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소설가를 꿈꿨다. 특히 박완서, 한수산을 좋아해 그들 작품은 빠뜨리지 않고 다 챙겨 읽었다.
5년간의 연애, 그리고 결혼. 부산에서 1년간 신혼을 보내고 남편 직장이 있는 양산으로 이사했다. 1남 1녀를 뒀다. 아이들은 무탈하게 잘 자랐다. 화목한 가정이었다. 헌데, 삶에 여유가 생기자 정작 자신이 무기력해졌다. 이유 없이 몸도 아팠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 상실이 왔다.
시의 길을 밝혀 준 스승 김광도·정일근 시인
마흔을 앞둔 즈음에 양산시가 운영하던 지금의 평생학습격인 농심대학에 입학하며 자아 정체성을 찾아 나섰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인연과 만나고 강의를 들으며 세상에도 눈을 떠갔다.
그렇게 지낸 1년 후, 졸업 작품으로 수필 한 편을 냈다. 중학교 때 글짓기 상을 받은 후 몇 십 년 만에 쓴 글이 상을 받았다. 그때, 심사를 맡았던 김광도 시인이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 길로 시 쓰는 모임에 참가하고 삽량문학회 회원이 됐다. 유년기부터 꾸었던 문학의 꿈이 되살아났다.
삽량문학회 사무국장 6년, 편집국장 5년을 맡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문학을 토론했다. 애매한 우리말이 있으면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고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말에도 일가견이 생겼다. 김광도 시인이 잠재돼 있던 그의 문학 혼을 일깨워 시인의 길로 인도했다. 첫 스승이자 시, 도반이 됐다.
경남대 교수로 있는 정일근 시인은 두 번째 스승이다. 2009년, 시 모임에서 전문성 깊은 분을 모셔 시 공부를 제대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울산에서 활동하며 고래문학제를 이끌던 정일근 시인이 꼽혔다.
하지만 정작, 정 시인이 한사코 제의를 거절했다. 김광도 시인이 나서서 겨우 설득해 2주에 1번, 3년 간 그에게 시 문학을 공부했다. 주로 습작시를 읽고 서로 소감을 나누고 정 시인에게 평가를 받았다.
30년 넘은 내공의 정 시인이 보기에 이제 막 문학에 눈을 떠가는 이들의 글은 한심하기 그지없었나 보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지적,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으니 입도 뻥긋 못하고 그저 깨질 수밖에 없더란다.
문학계에서 정 시인은 최고 독설가가 아닌가 싶더란다. 그렇게 혹독한 수련기를 거치니 시야가 넓어지고 촉이 발달하고 미학이 정립됐다. 그 지난했던 문학탐구 시간이 곰 삯아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기운이 됐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누구나 공감하는 시 쓰고파
최근 이문재의 시 ‘물의 결가부좌’를 읽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처럼 긴 시가 어찌 그리 술술 읽히는지, 단번에 끝까지 읽히는지,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시 세계가 다변화하며 파괴 시, 해체 시 등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는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특히, 서정적인 시를 쓰고 싶단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시,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져 힐링이 되는 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좋아하고 쓰고 싶어 한다. 결국, 시는 사람에게 위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그의 철학은 시 ‘동거’에서도 잘 나타난다.
담장 안의 호박 줄기가 목을 길게 빼고
생면부지의 감나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는 곧게 설 수 없는 줄기의 생이
손 잡아줄 누군가를 향하여 먼저 다가선 것이다
늙은 감나무를 위해 덩굴손의 방향을 바꿔 놓고
노끈으로 잘 묶어 두었지만
이미 뜨거워진 감나무의 가슴에 손을 넣어 본 뒤였는지
하룻밤 사이 다시 몸을 틀어 곁가지 하나 꼭 잡고 있다
그들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햇볕 나눠주고
잎을 맞대어 세찬 장맛비 막아 주었다
덩굴손은 군데군데 노란 꽃등을 켜고
나무의 해거리로 절명하는 풋감을 지켰다
서로 한 몸이 되어 긴긴 여름을 났다
영근 햇볕을 수확하는 계절
감나무에서 호박이 편안하게 늙는다
호박 덩굴에서 감이 붉게 익는다.
최근의 문단 흐름을 보면서 그는 가슴이 무겁다.
세월호 참사, 군대 폭력, 어린이 학대, 가족 동반자살 등 사회 제반 문제점이 고스란히 문학에 묻어나오는 현실이 처참하다는 것이다. 그 해 신춘문예를 보면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고 힘들고 고통스런 삶들이 넘쳐나는 사회, 과연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고달픈 세상에 그는 자주 눈길을 준다. 시, ‘새집’이다.
치솟는 전셋값에
외곽으로 밀려 난 남자가
잠든 사이
몰래 집 짓는다(중략)
종착역에 도착하면
잘 지은 새집 두어 채(중략)
- 시, ‘새집’ 중
남자의 양말은 발가락부터 헤진다
층층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머리 조아려 결재를 받고
커다란 꿈과 생존 사이에서
외줄타기 하며 수 없이 오그라들었을 남자의 발가락(중략)
양말에 발 냄새가 고약할수록
양말 속 열 발가락이 버틴 하루는 힘겨웠을 것이다
- 시, ‘양말론’ 중
오는 봄에는 스스로 어줍잖다고 평가하는 자신의 시들을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더불어 삽량문학회와 이팝시동인 활동에 천착하며 정일권 시인이 말한 ‘딱 한 줄만 건져도 성공한 시’를 일구러 부단히 정진하고 있다.
한관호 기자
hohan1210@y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