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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활기찬 노후..
오피니언

[박성진 논설위원 칼럼] 활기찬 노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02/10 12:58 수정 2015.02.12 11:38




 
↑↑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청년백수가 사회문제다 보니
어르신 일자리 걱정은 밀려나
80세 넘어서도 현역으로 뛰는
미국 영화계 소식이 부럽다
오랜 노하우, 경험 전수하면서
보람도 찾는 기회는 없을까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까지 애처로이 붙어있던 빛바랜 잎이 바람에 떨어지면 스산한 겨울 풍경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겨울이 왜 계절의 끝인가. 황혼, 석양, 낙조 이런 단어가 주는 감상은 한결같이 막 내린 연극 무대처럼 마지막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인생의 뒤안길도 이처럼 희망의 등불이 사그라든 종점이어야 하는 걸까.

겨울 햇살이 모처럼 양지를 만들어 도로 가장자리에 삼삼오오 모여서 쉬고 있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본다. 7대 3 정도로 할머니가 수적으로 우세하다. 모두가 노란 조끼를 입었는데 등에는 굵은 글씨로 인쇄된 ‘활기찬 노후’가 선명하다. 오전 나절에 두 시간 정도 길거리 청소를 하면 정부에서 돈이 나온다. 사실은 청소보다 어르신 건강을 위해 움직이게 만들고 용돈 쥐어주는 형국이니 그 정성이 따습다. 흡사 환갑을 앞둔 장남이 팔순 어버이를 모시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런 광경이 크게 낯설지 않게 보인다. 정부의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결과다. 무상이니 유상이니를 두고 정치권은 쌈박질하지만 어쨌든 복지가 화두이니 선진국 문턱에 다다르긴 했나 보다.

해마다 수십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 정부 예산을 들이붓고 있긴 한데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서럽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주검을 거두는데 필요한 최소한 경비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는 사례 앞에서는 경건해질 따름이다.

우리 전통적 사회규범은 ‘충효사상(忠孝思想)’이었다. 효가 충성보다 앞에 놓일 수도 있지만, 나라를 생각하고 어른을 모시는 미풍양속은 사회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단명했던 시기에는 ‘부모님 살아 있을 때 잘 섬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시조에서 보듯 어른 대접을 받았다. 그만큼 어른의 생전 지식이나 경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을 전수받느라 노심초사하곤 했다.

남녀 모두 80세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인 건강시대가 열리면서 심각한 사회현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만연한 경제여건 정체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구조조정이라는 괴물이 청년 백수는 물론 노인 백수까지 양산해 냈다. 그러니 어르신이 찾는 건 복지관이요, 시간이 많으니 제2의 인생이라고 황혼의 교제가 새 바람이 되고 있단다. 어느 일간지 기사 제목은 이를 웅변한다. ‘20대 CC 뺨치는 신중년 BC’. CC는 캠퍼스 커플이라는 영어 앞글자이고, BC는 복지관 커플이라는 신조어(新造語)다. 왜 우리 사회에서 어르신들 일할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가.

영화의 고장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살아있는 전설’로 존경받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8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또 한 번 토픽뉴스에 올랐다. 그가 감독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가 3천억원에 가까운 흥행수익을 올려 전쟁영화 수입 기록을 깼다는 것이다.

노익장(老益壯)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는 70세를 전후로 출연한 영화에서 원로 대통령경호원, 중년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사진사로 주역을 맡았으며, 80세가 넘어 출연한 영화에서도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활발한 현역을 구가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간혹 원로 배우들을 동원해 망가지는 코믹 영화가 만들어질 뿐 진지하게 그들의 역할을 요구하는 일이 드물다. 오죽하면 2012년 개봉된 ‘은교’라는 영화에서는 70대 노(老) 시인 역을 30대 배우에게 맡길 정도였다.

국민배우라고 인정받는 안성기 씨도 60세가 넘으면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이런 현상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물감 번지듯 만연돼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일자리 중에서도 은퇴한 어르신을 위한 여지를 적절히 만들어주고 있다. 일본의 대형 백화점 주차 안내원, 골프장의 할머니 캐디가 그렇다. 유럽의 큰 도서관 사서 자리에는 대개 나이 든 할머니가 앉아있다. 관광안내소를 지키는 할아버지는 뭔가 대단한 내용을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가.

정부가 지원하는 ‘어르신 일자리사업’이 활성화돼야 따듯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인생 선임자들이 그들의 노하우를 후세에 전수하며 보람을 느낀다고 해서 청년실업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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