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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떡 좀 주무르는 외국인 “떡은 내 얼굴”..
사회

떡 좀 주무르는 외국인 “떡은 내 얼굴”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5/03/03 09:05 수정 2015.03.03 09:03
우즈베키스탄인 라힘, 권투선수에서 떡 장사하게 된 사연

대학에서 복싱 배우러 한국행… 떡집 아르바이트가 인생 바꿔




“떡을 잘 만드는 기술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떡이 제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요. 깨끗하고 모양도 예뻐야 손님들한테 내 놓을 수 있죠. 맛은 기본이고요”

북부동에서 ‘착한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라힘(27) 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외국인이 한국 전통음식인 ‘떡 장사’를 한다는 게 조금은 의외다. 하지만 떡시루에서 나오는 하얀 김 만큼이나 떡에 대한 라힘 씨의 열정은 뜨겁고 진지하다.

10년전 복싱 배우러 한국행
아르바이트로 떡과 첫 인연
 

라힘 씨가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 2005년, 10년 전이다.

우즈베키스탄 권투선수였던 라힘 씨는 한국에서 권투를 배우기 위해 학생신분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경북 한 대학교에서 권투를 전공했다.

그러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국 친구가 있는 양산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신문 전단지를 통해 남부시장 내 낙원떡집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그렇게 떡과 첫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도 만두나 빵처럼 만드는 전통음식은 있지만, 떡은 없어요. 처음에는 너무 생소한 음식이었죠. 그런데 만들다보니 매력 있더라고요. 부드럽고 달콤하고 제 입맛에도 딱이었죠”

떡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개월 되던 때, 떡집 공장장이 개인 사정상 결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납품해야 하는 떡은 밀려있는 상황.

하는 수 없이 라힘 씨가 떡을 직접 주무르기 시작했다. 절편, 설기 등 10종류의 모듬떡을 완성해 낸 것이다. 비슷하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맛도 모양도 수준급이었다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떡 기술을 배우게 됐다.

7년간 배운 기술로 떡집 운영
떡케이크로 경연대회서 1등상


처음에는 언어가 큰 장애였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재료 이름 외우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낙원떡집 반영곤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라힘 씨를 응원했다. 성실하고 책임감도 있는 라힘 씨를 아들 같이 아꼈고, 라힘 씨 역시 아버지처럼 따랐다.

“7년 정도 배웠어요. 그리고는 평소 친분이 있던 집 앞 슈퍼 사장님과 함께 떡집 운영을 시작하게 됐죠. 기술이 있는 저는 공장장을 맡고, 슈퍼 사장님이 대표를 맡아 착한떡집이 탄생하게 됐어요”

라힘 씨 출근 시간은 평균 새벽 3시다. 정성껏 반죽을 해 따뜻한 떡을 만들어 놓으면, 출근하는 손님들의 든든한 아침식사가 된다. 모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 친구들도 착한떡집 단골손님이다.

라힘 씨는 특히 떡케이크 기술이 남다르다. 시루에서 쪄낸 백설기 위에 조각처럼 곱게 빚은 각양각색의 떡을 올려 먹음직스럽다. 3년 전 밀양에서 열린 떡경연대회에서 떡케이크로 한국인을 모조리 제치고 1등상을 거머쥐었을 정도.

“떡 케이크는 쓰이는 용도가 있죠. 생일인지, 돌잔치인지, 행사인지 반드시 물어요. 그래야 맞춤형 케이크를 만들 수 있거든요. 손님들의 입맛까지 최대한 반영해 단맛 등도 조절해요. 손님들이 만족하는 케이크가 제일 좋은 케이크죠”

얼마 전에는 양산시종합사회복지관에 떡국 떡 100kg을 기증했다. 어르신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는 소식을 듣고 명절을 맞아 떡국을 대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지난달 27일에는 떡국 나누기 봉사활동에도 직접 참여했다. 

“떡집을 키워보고 싶어요. 양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지역에도 제 떡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 아내가 임신 2개월째예요. 떡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 때 그 마음처럼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우리 가족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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