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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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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타파에서 출발한다
현대사회 시민의 삶은
규제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해
공직자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기본적인 행복권 보장된다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어가 있다. 최근 들어 가장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단어는 ‘갑질’이다. 갑이라 함은 갑을관계에서의 ‘갑’이다. 다양한 사회계약과 신분관계에서 권력 우위에 있는 자가 갑이요 반대 개념은 을이다. ‘노략질’, ‘담금질’ 등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이 붙어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갑질 유형이나 실례는 우리 사회에 흔히 널려있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상사에게 받는 위압과 굴욕감을 호소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부당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비정규직 종사자는 고용 불안정에 떨고 서비스업 종사자는 고객 횡포에 운다. 군대에서마저도 선임은 후임에게 갑질을 해댐으로써 분노에 찬 복수극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한 유제품 기업 대리점에 대한 횡포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갑질 논란이 불붙었다고 기억된다. 프랜차이즈 사업이나 전국 대리점망을 통해 제품을 유통하는 대부분 기업에서 만연돼온 갑을관계의 부당행위가 한 용기 있는 ‘을’의 고발에 의해 이슈화한 것이다. 당시 대기업 사주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이 방송에 잡히기도 했다.
재벌기업주나 2, 3세들의 비행기 내 난동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 뉴스거리도 잘되지 않았지만 굴지의 대기업인 대한항공 오너 3세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은 이전의 모든 해프닝을 총정리하는 대박을 쳤다. 활주로를 따라 굴러가는 비행기를 돌려세워 사무장을 내려놓고 떠난 항공사고는 이미 출발한 비행기 내 모든 권한은 기장에게 있다는 원칙에 익숙한 외국 언론의 큰 관심사가 돼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공조직에서의 갑질은 그 여파가 상상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군수 사업비리수사 결과 해군 총수권자가 구속됐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납품기업체에 대놓고 먼저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갑질 논란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젊은 판사가 여성 또는 노령의 피고인에게 막말과 모욕적인 언사로 꾸짖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가 하면, 검사 시절 사채업자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판사가 뒤늦게 들통 나 해임된 뒤 오히려 피고석에 앉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최근 장관으로 지명된 한 국회의원 4급 보좌관은 술에 취해 자신을 몰라본다고 대리기사를 폭행한 것도 모자라 파출소에 가서도 경찰관에게 ‘목을 날려버리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자신의 목만 날아가고 말았다.
공무원조직은 우리 사회 대표적인 ‘갑’이다. 각종 인허가와 조세 권한, 업무상 단속 및 제재 등 깊은 산 속 은둔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정부와 관계를 끊고 살아갈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영세업자에서부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까지 공무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부당한 업무처리로 손해를 입더라도 대놓고 항의하는 바보는 없다. 훗날까지 생각한다면 오히려 모른 체하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0년 전 국내 굴지의 유가공기업이 자기 부지 내에서 오래된 창고를 헐고 새 창고를 지으려는데 수도권 규제에 걸려 허가를 받지 못했다. 새로 지으려는 창고는 신축으로 간주해 면적 상한선이 초과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규제 철폐가 정부 화두가 되면서 시청 공무원의 법 규정 해석 과정의 착오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규제는 철통이다. 그동안 시청과의 협의 과정에서 얼마나 갑질에 당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양산시 민원지적과 공무원이 설 명절 전 한자리에 모여 친절봉사 다짐대회를 열었다. 시민의 충실한 봉사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다짐 속에는 민원의 신속ㆍ공정ㆍ정확한 처리와 시민 알 권리 충족, 다양한 정보 제공이 포함됐다.
시청을 찾는 시민은 친절하고 다정한 대응에도 고마워하지만, 시민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향적 자세를 더욱더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다짐대회는 민원지적과뿐만 아니라 다른 인허가 담당 공무원 모두가 참석해 대민업무 자세를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위민(爲民) 행정은 우리 사회 고질병인 갑질을 타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목민심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공직자는 시민 혈세로 녹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최초 임용 때의 위민봉사 각오를 날마다 되새기며 업무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