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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식 효암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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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정책이 결정되면 입시를 치러야 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는 새 대입 정책을 이해하는데 급급합니다. 대학 입시에 있어서 교육 수요자들은 늘 주변인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넘치고 어디에서든지 무림 고수를 만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는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정작 대학은 자신이 유리한 전형을 개발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입시 환경을 비켜 가거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합니다. 대학마다 입시 특징이 비슷하지만 전형 방법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대학별 전형 가짓수에 대학 수를 곱해 계산해보면 2천개 대입방법이 나온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입시시장을 혼탁하게 보이게 해야만 이익을 보는 집단의 농간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입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단순한 기사에 놀아난 결과는 아닐까요? 해마다 미세하게 바뀌는 입시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시의 중요한 흐름을 잡는 일입니다.
대입은 또 다른 구분짓기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줄세우기와 서열화 가치 숭상은 이미 우리에게 내면화 돼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반 꼴찌 진학 성적보다 모 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세속적인 학교평가가 돼버렸습니다. 꼴찌인 내 자녀 입시보다도 모 대학에 몇 명 합격했는지에 학부모는 흥분하기도 합니다. 모두 자신의 중요한 문제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입시라는 잣대 하나로 보면 대한민국에는 하나의 대학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잣대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문화산업과 기업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학벌이 개인의 능력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지표가 우리 사회에 널려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뀌는 세상의 모습을 나열하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입시제도는 세상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만큼 아이들의 꿈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받았던 문화의 수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태어났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지금의 수험생입니다.
지난해 새 학급 아이들을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를 가르쳤던 교사를 만나서 물어봤더니 역시 마찬가지였더군요. 입시 관점으로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제게도 말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대학입시와 연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입시제도는 그런 아이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학생의 다양한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고 출발하는, 이전 입시제도와는 다른 제도입니다. 우리 반 일등부터 꼴찌까지 꿈과 끼를 소중히 다루고 싶었던 그 첫 마음으로 대학입시와 관련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도전이자 즐거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