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발달장애아동을 둔 어머니 6명을 함께 만났다. 이들은 자녀치료를 위한 품앗이 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발달장애는 끊임없는 보살핌과 치료교육이 있어야 한다. 1년을 치료받아도 단 며칠만 소홀하면 다시 1년 전으로 퇴행하는 게 발달장애인이기 때문.
그래서 치료교육이 꾸준히 진행될 수 있도록 엄마들이 직접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자폐아를 둔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박영경(44, 중부동) 씨는 “발달장애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부모들은 치료센터에 목을 매죠. 언어치료, 감각치료 등 기본치료만 5가지가 넘어요. 최소 비용이 한 달에 150만원. 1년이면 1천800만원, 3년이면 5천만원이 넘어요. 부모 심정과는 상관없이 돈 때문에 3년이 지나면 치료를 포기하는 부모들이 태반이죠. 그래서 우리 자녀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품앗이교육을 하기로 했어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엄마들끼리의 약속이기도 하구요”고 말했다.
자폐아동에 대한 오해 “부모는 무조건 죄인이죠”
이들 가운데 자폐아를 둔 엄마는 4명이다. 자폐아를 둔 엄마로 살아가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주위 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가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로 태어난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현실 때문이다. 거리에서 아이가 돌발행동을 하고 경기라도 일으키면 그런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김영화(39, 상북면) 씨는 “자폐는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눠요. 반응성 애착장애로 인한 것이 후천성 자폐인데, 이것이 흔히들 말하듯 부모 애정이나 관심 부족으로 인해 발발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가 선천성이예요. 출생 당시부터 뇌 발달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데 아직까지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죠. 하지만 자폐 아동을 둔 모든 부모가 죄인이 되고 있어요. ‘엄마 잘못으로 인해 아이가 아프다’는 얘기를 더는 듣지 않았으면 해요. 혼자 눈물로 삼키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거든요”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정애(41, 양주동) 씨는 자폐 증세에 대한 오해도 많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발달장애를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로 나눠요. 중증 자폐인 경우 지적장애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상당수 자폐 아이들은 지적능력이 높아요. 단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죠. 대부분 자폐아는 한 가지 특출난 재능이 있어요. 그 재능을 이끌어 내고 계발해 줄 사람이 필요하죠. 그래서 교육이 정말 중요한데, 사설교육기관에서는 자폐성향을 가진 아이를 받아주려 하지 않아요. 결국 그 몫과 책임은 오롯이 엄마한테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적장애는 지능은 낮지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인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돌발행동으로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폐 진단을 받게 되면 마치 사회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박 씨는 자폐 진단을 받을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 아이가 3살쯤 됐을 때, 지인이 살며시 얘기하더라고요. 자폐 성향을 보이니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요. 떠밀리다시피 병원을 갔지만, 진짜 목적은 자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어요. 결국 자폐성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았죠. 6개월까지는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내가 좀 더 잘하면 우리 아이는 괜찮을거야’라며 스스로 최면까지 걸면서 현실을 부정했죠.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1년이 지나서야 들었죠. 그 때부터 유치원 교사의 꿈을 버리고 오롯이 아이에게 내 인생을 걸었죠”라고 말했다.
이영화(41, 중부동) 씨는 사회는 물론 의료계조차도 자폐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는 “자폐라는 사형선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는 병원이 야속했어요. 이후에도 무미건조하게 아이를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미웠죠. 엄마는 모든 것을 걸고 의사만 바라보고 병원을 왔는데 말이죠. 그래서 내가 직접 하기로 했어요. 내 아이의 24시간에 걸친 모든 생활지도, 학습지도, 식단지도 등을 직접 했어요. 무엇보다 사회생활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유치원 때부터 아이 친구들에게 손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는 몸이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프게 태어났다’는 표현을 통해 자폐에 대해 주위 친구들에게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죠. 4년간 노력으로 지금은 일상생활에 안정을 찾았어요. 친구들도 많이 생겼구요”라며 희망찬 어조로 얘기했다.
제도 미비에 두 번 우는 부모 “돌봄 말고 치료교육으로…”
제도적 미비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장애인 수가 가장 많은 지체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는 대부분의 장애복지제도로 인해 ‘장애인 중의 장애인’이라 불리는 발달장애인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복지예산을 더 달라는 게 아니예요. 편성돼 있는 복지예산만이라도 제발 현실에 맞게 써달라는 거죠. 장애인 활동보조사업은 지체장애 중심으로, 휠체어 보조나 가사 일을 도와주는 거예요. 하지만 발달장애는 돌봄이 아니라 치료서비스가 필요한 거예요. 80시간의 활동보조사업을 치료교육사업으로 활용한다면,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엄마들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요?”라고 하소연했다.
마지막으로 김영화 씨는 최근 논란이 된 장애아동재활서비스 중단 사태 역시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자폐 진단은 7세 이전에는 받기 어려워요. 무엇보다 자폐아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으려는 엄마들의 몸부림으로 치료서비스에 매달리는 것인데, 장애인으로 등록된 아동만 치료서비스를 받도록 양산시 정책을 바꾼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제발 발달장애아동에 조금만 더 이해해 줬으면 해요”라고 행정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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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빛으로 희망 전하는 날
양산타워, 구름다리에 푸른 등 켜지는 그날 기대
얼마 전 대구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엄마와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들이 함께 뛰어내렸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지만,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엄마의 가슴 부위가 함몰돼 있었는데, 뛰어내릴 때 아이를 꼭 껴안은 것으로 추정됐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래도 모성애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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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등 켜기 캠페인에 참여한 갤러리아 백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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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 인천 등 참여
4월 2일은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다. 그러나 해마다 이맘때쯤 들려오는 국내 자폐증 관련 뉴스는 어둡기만 하다.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와 그 부모들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막막한 치료와 앞날에 부모는 이처럼 아이와의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자폐성장애는 일상적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며, 자폐인의 70% 이상이 행동문제와 지적장애를 동반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의사결정과 판단이 어려워 인권 사각에 있는 심각한 발달장애다.
하지만 뒤늦게 장애범주에 포함해 사회전반의 인식이 낮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자폐에 대한 공감이나 대책마련이 미진한 상황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되고 있다.
이에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은 UN이 자폐성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07년 제정했다. 지난 2010년부터 미국 록펠러센터,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브라질 예수상 등 3천여개의 랜드마크들은 자폐증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파란 불을 밝히는 글로벌 공익 캠페인 ‘푸른 등 켜기(Light it up blue)’에 참여해 오고 있다. 파란색은 자폐증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며, ‘인식’, ‘이해’의 뜻이 있다. 현재는 90개국, 7천여곳의 명소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3년 서울N타워, 인천대교 등에서 최초로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지난해에는 그린팩토리를 비롯해 정부청사 등이 새롭게 참여했다. 올해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주최로 기념식과 함께 파란쿠폰 나눔, 블루워킹, 파란명함, 페이스북으로 전하는 파란메세 지, 파란학교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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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등 켜기 캠페인에 참여한 동호대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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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인식과 여건 많이 부족
양산지역 자폐장애인은 78명이다(2014년 12월 기준). 전체 장애인(1만2천794명)의 0.6%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이보다 더 많다는 게 장애인부모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부분 소아청소년기에 자폐 진단을 받게 되는데, 7세 이전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더욱이 장애범주에 포함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가 지적장애 진단을 받기 일쑤다.
전국 유일 발달장애전문 나사함복지관 이사장이자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사 방대유 지사장은 “외국 사례를 보면 자폐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 환자 1명에 7명의 전문의가 3주 동안 심층적으로 관찰한다. 그만큼 신중하게 진단해야 하는 병이다”라며 “부산의 경우도 아이에게 자폐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손가락에 꼽힐 정도며, 양산은 1명의 전문의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자폐에 대한 사회전반의 인식과 여건이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산은 다가오는 4월 2일 세계 자폐인의 날과 관련한 어떠한 행사도 계획된 것이 없다. 양산뿐만 아니라 경남 전체가 사정이 마찬가지다.
방 지사장은 “경남은 아직 자폐인 관련 사회단체가 없다. ‘푸른 등 켜기’ 캠페인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자발적 노력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자폐장애인 가족과 그 주변에서부터 이같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양산타워와 구름다리에도 푸른 등이 켜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 푸른 등 켜기 캠페인에 참여한 파고다 종로타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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