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급식이 시작됐다. 지난 1일부터 양산을 포함해 경남 18개 시ㆍ군이 무상급식 시행 8년 만에 전면 유상급식을 시작하게 됐다. 학부모단체와 일부 사회단체가 여전히 극심한 반발을 하고는 있지만, 유상급식 전면 시행으로 우선 1라운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2라운드가 남았다. 바로 무상급식 예산을 전용해 추진하려는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이다. 경남도는 지난달 19일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안>을 통과시켜 사업을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제 그 사업을 집행해야 하는 지자체에서 조례안 제정에 대한 논란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양산시의회 역시 조례안 제정을 둘러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급식 대신 서민자녀 교육 지원키로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은 경남도가 올해부터 학교 무상급식 식품경비 지원을 끊고, 그 예산으로 서민자녀 학력향상과 교육경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도비 237억원과 시ㆍ군비 386억원 모두 643억원을 들여 소득인정액 기준 최저생계비 25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실제소득 250만원 정도) 가정의 초ㆍ중ㆍ고교생에게 직접 지원한다. 선정되면 방학기간 동안 영어ㆍ수학ㆍ과학ㆍ논술 등 주요과목 학습캠프에 참여할 수 있다. 또 ‘진로 프로그램’과 ‘명사특강’에 참여하고,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부진학습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경남도는 이 사업을 올해 진행하기 위해 지난달 16일부터 읍ㆍ면사무소와 동주민센터를 통해 신청을 받고 있다. 당초 지난 3일까지 마감이었지만, 무기한 연장으로 신청기간을 변경했다. 3일 현재까지 양산지역 신청 가구 수 4천653가구, 학생 수 7천470명으로 집계됐다.
양산 학부모ㆍ시민단체 반발 극심 ↑↑ 유상급식으로 전환된 첫날인 지난 1일 무상급식지키기 양산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 부결을 촉구했다. ⓒ
이같은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에 대해 양산지역 학부모단체와 시민단체 반발이 거세다. 무상급식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교육주체와 지원 대상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채 사업을 급조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양산시의회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은 조례안 관련 사업을 신청부터 받는 등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식 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지키기 양산운동본부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은 홍준표 지사의 대권야욕을 충족시키기 수단으로서 졸속적으로 발의ㆍ통과시킨 급조된 것이며, 각 시ㆍ군에도 강요한 사업임을 이미 양산시민과 학부모들은 잘 알고 있다”며 “지원 대상자들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임금ㆍ재산상황 등을 신고해야 하는 ‘가난 신고’를 통해 낙인효과를 초래하는데다, 교육청 사업과 유사ㆍ중복된 내용이 많아 예산 중복투자에 따른 도민 혈세 낭비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무상급식지키기 집중행동 밴드 학부모들 역시 기자회견과 집단시위를 통해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을 질타했다. 이들은 “양산시는 경남도의회에서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안이 통과되기도 전인 지난달 10일부터 시청 홈페이지 팝업창을 게시해 홍보했는데, 행정착오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더욱이 양산시가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양산시의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8~29일 주말 동안 마치 국가 비상사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마을이장과 마을방송 등을 통해 신청을 종용하는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고 토로했다.
조례안 심의하는 의회에 관심 집중
때문에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을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조례안 제정 여부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국 조례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양산시의회에 사실상 무상급식 2라운드 바통이 넘어간 셈이다.
사실 이 사업은 보조금 지원사업으로 현재 경남도와 양산시 보조금 관리 조례만으로도 추진할 수 있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지방재정법이 일부 개정돼 내년부터는 개별 조례가 없으면 보조금 지원사업을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해로 끝나는 일회성 사업이면 몰라도 꾸준히 재원이 예상되는 사업은 시ㆍ군 조례로 예산편성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무상급식이 재추진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굳히기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의원들 개인 입장표명 시작해 ↑↑ 지난달 30일에 무상급식지키기 집중행동 학부모 모임에서 사교육을 조장하는 서민자녀지원사업을 중단하라는 집회를 열었다. ⓒ
양산시의회 의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양산시는 집행부 발의로 2월 27일부터 3월 18일까지 조례안이 입법예고 됐고, 예정대로라면 3월 말 임시회에서 제정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하지만 의회 위상을 훼손시킨 공무원 문책 등의 조치요구에 대한 양산시와의 갈등으로 임시회 개원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조례안 심의 역시 연기됐다.
이 기간 동안 양산지역 학부모 반발이 거세지면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던 의원들이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월 말로 예상되는 임시회에 앞서 몇몇 의원들은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기준 양산시의원(새누리, 동면ㆍ양주)은 “의회와 의원은 시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에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개인적인 견해로 선별복지를 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지만,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무상급식은 분명 사회적 합의가 돼 시행된 것인데 공개토론이나 여론형성 없이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의견과 동시에 조례안 통과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상걸 양산시의원(새정치연합, 동면ㆍ양주)은 “무엇보다 복지사업은 사회보장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협의 후 해당 절차를 밟게 돼 있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않은 채 조례안부터 만들어 위법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이 외에도 의회 승인없이 사업을 우선 시행하는 등 절차는 물론 내용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조례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심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