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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희망웅상 홍보분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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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었다. 색이 바래버린 수많은 리본과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온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죄책감과 미안함에 목이 메어와 굽이치는 파도는 심하게 굴곡을 이뤘다.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또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을까. 부디 못난 어른들을 용서해 주기를…. 나는 염치없이 빌고 또 빌었다.
사실 타인의 고통을 말없이 보듬고 기억하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살기 위해 스스로 망각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생명체가 갖는 생존의 본능이기도 하다. 허나 유족들이 가진 아픔은 억겁의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남겨진 자의 고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어 육신마저 소멸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행여 있을까 봐 나는 두렵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혼자만의 아픔이 돼서 더는 위로도 위안도 없는 나날을 견디고 있음을 우리가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는데 애써 모른 척 넋 놓고 있어야 하는 걸까? 과연 우리가 이래도 되는 걸까?
타 도시에 있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네가 매일 그립다. 꽃이 피면 꽃이 펴서 그립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그립고, 바람 불면 먼 곳에 있는 네게 혹시라도 이 그리움이 전해질까 창을 열고 한참을 서 있다’
매년 4월이 오면 흐드러진 벚꽃 아래로 떠오르는 얼굴을, 살기 위해서 잊으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팽목항에서 내가 만난 것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 땅의 어미들이다. 날마다 2014년 4월 16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이 땅의 어미를 말이다.
그래도 세월은 잔인하게 흐르고 역사의 한 귀퉁이에 이날의 비극이 기록될 것이다.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그 날의 참담함과 비통함을 역사는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노란색 하면 나는 개나리, 보름달, 병아리, 나비, 봄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노란 리본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됐다. 언젠가부터 노란색이 슬픔을 연상하게 되는 색이 됐노라고 말하는 나. 나는 2014년 4월 16일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통곡하며 지켜본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어른 중 한 사람이다.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어른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잡아 줄 손을 믿고 기다렸건만 우리가 먼저 손을 놓아버린 잔인한 그 시간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무정한 어른이다.
늦었지만 그리움의 눈물이 서해가 돼 출렁이고 있는,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에서 나는 그 날을 결코 망각 속에 가두지 않겠노라, 살기 위해 더는 비굴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