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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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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이 남긴 메모 한 장에
정치권은 쓰나미를 맞고 있다
국민 탄식과 실망감도 크지만
지금 부패 사슬을 끊지 못하면
대한민국 미래 기대할 수 없다
성완종 메모가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야산에서 발견된 쪽지에는 현 정부 핵심 실세 몇 사람 이름과 함께 전달된 돈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 직전에 언론사와 직접 통화한 정황에 비춰 치밀하게 계산된 유류품이었던 것 같다.
고인이 의도한 대로 뇌관은 즉시 폭발했다. 당장 현직 국무총리가 직격탄을 맞았고, 경남도지사도 치명상을 입고 방어에 힘을 쏟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자리를 이어 온 비서실장 세 사람에게도 유탄이 발사됐고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 핵심 참모였던 인물에게도 미사일이 명중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언론 인터뷰 녹취록 진실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세상을 향해 던진 그의 함성은 일단 통했다.
많은 국민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있는 부패 사슬에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특종을 잡은 언론사는 시대의 소명인 양 들떠있고, 야당은 직접 거론되지 않은 참에 선거 명줄로 보고 극단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치계 속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금배지를 함께 달았던 옛 정치동료의 상가를 찾는 발길도 뜸하다. 당장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리스트가 걱정돼서인지 성 전 회장에 대한 원망이나 힐난은 여야 어디서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자원외교 비리 특별수사에 포착돼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이 임박했던 시점까지 비리 기업인으로 몰아가던 언론도 그날 이후로는 기조가 바뀌었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자수성가한 기업인, 남몰래 장학사업을 해 온 검소한 기업인 등으로 그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8년이나 지난 해묵은 그의 자서전도 화제가 됐다.
현 정부 집권 기간이 반도 채 지나기 전에 정권 핵심부를 향해 정조준된 성완종 리스트의 폭발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살아있는 정권에 대한 대규모 폭로게임은 본인이 살려고 하면 할 수 없다는 속설이 증명된 것일까. 자신의 목숨과 바꾼 리스트 한 장의 파급 효과는 그래서 큰 것일 수밖에 없다. 현직 총리는 목숨을 건다고 했다. 하기야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 중 누구도 제기된 의혹을 인정한 사람은 없다.
비리를 폭로한 당사자가 고인이 된 마당에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고해성사할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아랫사람이 한 일이라 본인은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자금이나 뇌물수수 혐의 회피 관행이다.
이 정도 스캔들이라면 다른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수상이 나서 해명하고 수습해야 할 정도의 사안이다. 자신은 몰라라 하면서 엄정 수사시키겠다는 원칙론만 내세운다면 국민 정서를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참에 우리의 전근대적인 정치 풍토를 확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시중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좋은 이미지 속에는 부친 박정희 대통령의 청렴과 반부패에 대한 향수도 포함돼 있다.
박 대통령도 취임 전이나 후 많은 담화에서 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부패한 직업군으로 국회의원이 맨 위에 올랐다고 한다. 정경유착과 비리 사슬은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
또 한 가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처신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표적수사에 대한 억울함과 친분을 나눴던 정치인의 표리부동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이 폭로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겠지만, 그 자신 이 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정경유착과 부당한 검은 거래의 당사자로서 반성의 여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많은 국민은 이 시점에서 성 전 회장이 반대급부적으로 동정을 받는 사실에 마뜩잖음을 느끼고 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시점에 자신에게 등을 돌린 정치인에게 비수를 꽂으려 했다면 그보다 먼저 본의 아니게 정치권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인으로서의 자기반성을 통렬히 거쳤어야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건국 70년 이래 최대의 정치 변환기를 맞고 있다. 역경을 타고 넘어 선진정치로 가느냐, 거대한 일격을 당해 침몰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불신이라는 쓰나미를 맞은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