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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장애인 인권, 우리가 직접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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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우리가 직접 말해요”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5/04/28 10:07 수정 2015.04.28 10:04
가온들찬빛 소속 지적장애인 4명, 인권강사로 변신

강연내용 달달 외우고, 시연회까지… 전국 첫 사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지 35년이 됐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등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는 느린 대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장애인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인권이 그렇다. 도가니, 인강원 사태 등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여전하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지킴이로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나섰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기만 하던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강단에 서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유제우(33)ㆍ정미자(48)ㆍ황영지(23)ㆍ윤정훈(44) 씨가 그 주인공이다. 평산동 가온들찬빛 소속 장애인이자 인권 교육자로 변신한 이들을 만났다.

↑↑ 평산동에 위치한 장애인생활시설 가온들찬빛 소속 지적장애인 4명이 인권강사로 변신해 강단에 섰다. 사진 왼쪽부터 정미자, 황영지, 유제우, 윤정훈 씨.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직접 선택해서 결정하고, 책임도 지는 것이 바로 ‘인권’입니다”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경북 경주시 코모도호텔에서 ‘장애인 인권강사와 함께하는 인권캠프’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지적장애인 4명이 ‘인권, 어렵지 않아요’라는 주제로 장애인들 눈높이에 맞춘 생생한 강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지체장애인이 아닌 지적장애인이 직접 강사로 나선 것은 전국 첫 사례다. 이들은 평산동 장애인 생활시설 가온들찬빛 소속 장애인이다.


장애인 눈높이 맞춘
생생한 강의로 ‘눈길’


가온들찬빛은 2002년부터 ‘가온인권행복위원회’를 조직해 장애인 인권사업을 실천해 왔다. 각종 행사는 물론 장애인 인권보장과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활동, 세미나 등을 꾸준히 진행했다. 그러던 중 인권 강의가 흡사 장애인들에게 반복되는 잔소리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강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장애인 인권강사 양성사업을 추진한 가온들찬빛 박지현 사회복지사는 “장애인들의 인권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항상 강조해 왔지만, 결국 그러한 주장 역시 타인이라고 볼 수 있는 비장애인이 주장하는 것일 뿐”이라며 “같은 장애를 가진 강사가 직접 얘기를 한다면 강의를 듣는 장애인들의 생각이 분명 다를 것이라는 판단에, 부산시사회공헌정보센터에 이 사업을 응모해 지원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기결정권ㆍ자립권 등 다양한 주제


박 사회복지사 지도 아래 지적장애인 4명은 지난해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 지난 16일 울산 동원재활원에서 첫 시연회를 가졌다. 다소 떨리고 긴장됐지만 사람들 앞에서 강의한다는 자부심에 모두가 행복한 첫 날로 기억하고 있다고.

윤정훈 씨는 “주말도 쉬지 않고 연습했다. 강의 내용을 대본 외우듯 달달 외웠다. 정장을 입고 강사명찰을 달고 힘찬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얘기했다. 모두가 잘했다고 칭찬했고, 나도 너무 뿌듯했다. 인권 강사로 나서길 정말 잘 한 것 같다”고 이 날을 회상했다.

이들의 강의 주제는 모두 다르다. 평등ㆍ인격권, 사생활보호ㆍ자기결정권, 경제ㆍ노동권, 시설자립권 등 평소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선택했다.

시설자립권을 주제로 강의한 정미자 씨는 2년 전 시설에서 독립해 현재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정 씨는 “내 꿈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함께 사는 것이었다. 나는 그 꿈을 이뤘다. 가온들찬빛에서 생활하는 동안 항상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지를 공부했다. 그것을 다른 지적장애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생활보호ㆍ자기결정권을 강의한 유제우 씨 역시 평소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다. 유 씨는 “만약 친구가 돈이 없어졌다며 ‘네 옷장에 뭐가 있는지 보자’고 한다면 ‘내 옷장 열쇠는 내가 갖고 있고, 열 때는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내 의견과 생각을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이 먹고 싶은지 말하는 것도 인권이다”고 강조했다.


당당한 전문강사 될 때까지 노력


이들이 직접 인권 강사로 나선 이유는 제각각이다. 복지사의 권유도 있었지만, 평소 인권에 대해 할 말이 많기도 했다.

황영지 씨는 “가온들찬빛에서 인권누리단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복지학과를 전공해 장애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우리를 보는 시선이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인권, 우리가 직접 얘기해보자는 취지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6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다시 한 번 더 강단에 설 계획이다.

박지현 사회복지사는 “6월 강연회는 지적장애인뿐 아니라 지체장애인까지 있는 자리로,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이들이 어떤 강단에 서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전문강사가 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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