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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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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시민 문화적 수준 오른다
미반납과 훼손 등은 아쉽지만
책 많이 읽는 사회는
도덕과 인성이 바로 서는 곳
지난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1616년 4월 23일을 기념한다고 한다.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이날이 되면 남자는 장미꽃 한 송이를, 여자는 책 한 권을 선물하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니 소박한 그들의 전통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출판하는 책의 양은 세계에서도 가장 많을 정도다. 하지만 독서량은 그와 정반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맨 아래에 위치한다. 실제로 국민 1인당 1년에 읽는 책은 미국이 6.6권, 일본이 6.1권, 프랑스는 5.9권인데 비해 우리는 1.3권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인도 평균 2.6권을 읽는데 우리나라 성인 중 1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35%에 달한다고 한다.
도서 출판량이 많다는 것은 아쉽게도 서점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베스트 셀러, 학생 참고서와 문제집 덕분이다. 시집과 인문 서적은 출판사에서조차 만들기를 꺼리는 비인기 종목이다.
최근 들어 양산시에서는 도서관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증폭돼 왔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북부동 고갯마루에 위치한 양산도서관과 소규모 웅상도서관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대규모 시립도서관과 크게 증축된 웅상도서관 말고도 소주동 영어도서관이 운영 중이고 양산도서관도 리모델링이 거의 끝나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단지마다 작은 도서관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도서관은 책을 읽고 빌리는 곳만은 아니다. 다양한 콘텐츠가 접목돼 시민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아쉬운 건 아직도 미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양산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립도서관과 웅상도서관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빌려 간 책을 제때 반납하지 않은 사례가 700권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6개월 이상 반납이 지연되고 있는 경우도 200권에 달한다고 한다.
개중에는 책을 훼손하거나 장기 대여로 다른 희망자의 기회를 봉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고 한다. 도서관 소장 도서는 29만 시민 모두의 것이다. 누구라도 손쉽게 찾아서 원하는 도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소 부정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시설이 늘어나고 시민이 책을 접할 기회가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청소년 사회에 스마트폰이 대세를 이루면서 숱한 흥밋거리와 정보, 영상 게임이 즐비한 현실은 더욱더 책을 멀리하게 만들고 있다.
어릴 때 책을 가까이하지 않은 아이가 어른이 돼서 독서삼매에 빠질 확률은 거의 없다. 책 읽기는 평생을 가는 습관인 것이다. 청소년기 이전에 세계 고전 명작을 섭렵할 기회를 가진 아이들은 신체 발달과 함께 충분한 감성적 성장을 기할 수 있다. 이는 점차 메말라가고 있는 세태를 변화시킬, 더디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며칠 전 인천 국제 책 박람회를 찾은 이스라엘 대표는 “책을 훔쳐가도 괜찮다. 안 읽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제2의 도시 텔아비브 부시장인 레하비 여사는 “도서관이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텔아비브 시 곳곳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은 등록절차마저 없애 누구나 간단하게 책을 빌릴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매달 수십 권이 도난 또는 분실됐지만 계속해서 책장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후반에 당시 한양에서는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 있었다. 빌리는 값은 물론 담보까지 제공해야 이용할 수 있었지만 규수나 평민으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재미있는 것은 책을 빌릴 때 주의사항인데 낙서하거나 찢지 말 것이요, 날짜를 꼭 지키라는 것으로 오늘날 도서관에서도 통용되는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연애편지를 써서 끼워 넣지 마시오’라는 문구도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 사회상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책은 이렇게 인간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니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