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모든 일이 헝클어지고 마음에 요동이 일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날이. 그럴 때마다 생각을 정리하고 평온을 가지기 위해 나는 법기수원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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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고목과 정자에서 마을 주민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고향과 같은 곳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하다.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주지만, 이렇게 웅장한 히말라시다와 편백 숲을 바라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편백 숲에서 마음껏 피톤치드를 들이마셔 본다.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일순간 증발하는 기분이다.
한 그루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반송, 이런 반송이 법기수원지에는 14그루가 있다. 맞은편 끝까지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길 사이로 벤치가 있다. 새로 만든 데크 계단은 수원지를 더욱 넓게 바라보고 산책을 조금 더 길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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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퍼진 반송은 수령이 130년이 넘은 나무들이다. 댐마루에 7그루가 심겨 있어 칠형제 반송으로 부른다. 130년 세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자라난 반송.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낼까. 대자연뿐만 아니라 나무 한그루 앞에서도 경건한 마음이 든다.
끝에 다다랐으니 아쉽지만 이제 내려가야 한다. 데크 구간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날 수 있는 곳. ‘원정윤균생(源淨潤群生)’이라는 언젠가 들어본 듯한 한자가 쓰여있다.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뜻으로 일제강점기 시대 두 차례 조선총독을 역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새긴 글이다.
독립운동이 전개되자 겉으로는 기존 통치방법인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고 속으로는 헌병을 경찰이라는 이름으로만 바꿨을 뿐, 군병력을 증강하고 식민지 교육정책을 강화했다. 마코토가 새긴 글에서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픔을 상기하고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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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여유롭게 앉아 있으면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벼락을 맞은 히말라시다는 생을 마감하고서도 꼿꼿하게 서 있다. 법기수원지를 한 바퀴 돌며 어지러웠던 마음을 정리했다.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마음의 짐은 법기수원지의 넉넉한 품에 내려놓았고 어렴풋하게나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