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詩 한 줄의 노트] 유명한 무명시인..
사회

[詩 한 줄의 노트] 유명한 무명시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05/19 09:40 수정 2015.05.19 09:37
김순아 시인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시인 초년병 시절, 한 선배 시인에게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니가 뭘 몰라’ 묘하게 웃던 선배는 그 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름이 주렁주렁해졌다

그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도
‘중견’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게 붙여지는
은둔과 칩거의 무명시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무명으로 남는 일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안다
'무명’은 이루었지만
아직 유명을 이루지는 못했다

내가 한, 내 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제 유명해질 일만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유명해지는지를 몰라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하지만

주렁주렁한 이름 대신
시가 주렁주렁해 지는 일
더 어려운 그 일에 매달려 여전히
고집 부리듯, 변명하듯
세상의 변두리에서 쌉쌀하게 살며
아직도 덜 뜬 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아직도 덜 뜬 나의 눈을 닦아내곤 한다


권천학 시인


‘현대문학’에 ‘지게’, ‘지게꾼의 노을’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청동거울 속의 하늘’,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과 캐나다에서 활동 중이다.

-------------------------------------------------------
시와 시인이 엄청난 숫자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시가 읽히지 않는다. 사물이 다르고 사람이 달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니 시가 내 마음도 네 마음도 모르는 활자가 돼버린 느낌이랄까. 그런데 ‘유명한 무명시인’은 달랐다.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시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렁주렁한 이름 대신/ 시가 주렁주렁해 지는 일’, 나 또한 얼마나 갈구해 왔던가.

유명해지고 싶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름이 주렁주렁해’지고 싶은 욕망을 누르는 것은 출세지향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유명한 무명시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시는 자기 모색이지, 출세를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집단을, 타자를 보고, 결국 자신을 보는 자다. 시를 통해 나를 찾고 그 너머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시 쓰기이며, 그 과정에서의 자기 응시, 이것이 시인이 맨 먼저 갖춰야할 조건일 것이다. 시를 쓰면서 스스로 달라질 것이 없다면 시가, 문학이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시는 ‘이름이 주렁주렁한’ 시인의 시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진지한 작가정신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육성의 언어다.

시를 읽고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쌉쌀하게 살며/ 아직도 덜 뜬 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아직도 덜 뜬 나의 눈을 닦아내’려는 시인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고집 부리듯, 변명하듯’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