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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임 희망웅상 홍보분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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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갱년기라 했다. 또 누구는 편해서 한가한 소리 한다고 콧방귀 뀌었다. 남편은 한집에 너무 오래 살아서 지루할 수도 있다고 이사를 한번 가보자 했다.
책을 뒤졌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뭐 별 뾰족 한 수도 없었다. 한동안 인생 지루하다는 생각이 뭘 해도 머리 한켠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빈집에 우두커니 앉아 TV를 켜고 무심코 영화를 검색하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제목을 봤다. 순간 심장이 쿵 뛰었다. 죽기로 결심했다는 말은 죽지는 않았을 것이고 주인공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뭔가 나에게 답을 줄 것 같았다.
첫 장면이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주인공 베로니카가 독백하는 장면인데 내 귀를 의심했다. “좀 있으면 결혼할 테지. 아이를 낳을 테고 집안일과 육아에 힘들어 밤마다 곯아떨어질 테고 그러면 남편은 바람을 피울 테지. 몇 번 싸우다 잘못했다 비는 남편 눈 감아 줄 테고 더 나이 들어 아이들 결혼하고 할머니 되고 병에 시달리다 죽을 테지”
결국 베로니카는 항우울제로 처방받은 약을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반응이 오기 전에 커튼 사이로 창밖을 보는데 옆집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곧바로 쓰러지고 구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가 응급처치받고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때 의사가 하는 말. “안타깝게도 약물이 심장에 무리를 줘 얼마 살지 못합니다. 길어야 6개월!”
그 뒤에도 베로니카는 계속 죽을 결심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그제야 살면서 해 보지 못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탈출을 감행한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바다 일출을 보며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것! 둘은 탈출에 성공하는데 그 장면을 지켜본 의사의 독백,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약은 실제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처방을 내리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렇구나, 내가 100살까지 살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구나.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오만에 빠져 천 년 만 년 살 거라는 생각에 인생을 지루해했구나! 한순간에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래놓고 보니 고맙지 않은 게 없었다. 아침마다 걸어 다니는 산책길이 우리 동네에 있는 것도 한없이 감사하고 두 발로 힘차게 걸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두 눈으로 연둣빛 향연을 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심지어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다. 암 투병하던 친구 병문안 가서 위로해 주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먼저 죽었다는 라디오 사연처럼 우리는 언제 무슨 일로 생을 마감할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한 달 뒤일 수도 일 년 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자.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자. 어느 때고 죽음이 찾아와도 멋지고 신나게 잘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잘 죽을 수 있도록 이 ‘순간’을 즐기자.
가슴이 뛰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부터 적어 봤다. 중학교 시절 철없이 성악가를 꿈꿨던 ‘나’가 떠올랐고, 철이 좀 들면서 봉사단체 만들어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다 흐지부지했던 것도 떠올랐다. 바로 합창단에 가입했고, ‘희망웅상’이라는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다.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으므로…. 나는 날마다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