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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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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 추락하고 경제도 휘청해
정부의 부실한 대응규범과
형식적인 재난대비훈련의 결과
양산시 안전관리 예외 아니다
각종 재난 대비 매뉴얼 점검할 때
한때 일반 가정에 비치됐던 ‘전시대비 국민요령’이라는 책자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속박에서 벗어나자마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 사회는 전쟁 공포와 악몽을 씻어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재난 중에서도 가장 큰 재난으로 인식됐던 전쟁이 또다시 발발할 경우를 대비해 국민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기술한 책자를 각 가정에 배포한 것이다. 지금도 다소 진화된 방법이지만 군과 관공서를 위주로 전쟁 대비 지휘소 훈련을 매년 하고 있다.
속칭 ‘매뉴얼’이라 불리는 특정 상황에 있어서 행동 요령이나 통제 방법은 무엇보다도 실효성이 강조된다. 모의실험이라 불리는 ‘시뮬레이션(simul ation)’을 통해 특정한 사태의 진행이나 결과에 대해 예측하고 그에 따른 대처 행동이나 의사 결정을 끌어내는 기법이다.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은 특히 사태의 심각성에 의해 상당한 통제를 수반하게 되는데 반발 없이 수용하는 것이 모범시민으로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길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재난 대비 매뉴얼을 실효성 있게 수립하는 것이 우선이요, 필요시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 발생에 따른 정부 초기대응 부실과 무능한 질병관리대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구촌 시대인지라 확산 방지를 소홀히 한 데 대해 주변국의 원망이 쏟아졌고 관광객 입국 취소 사태도 급증하고 있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그들이 접촉했다는 감염노출자 현황 앞에서 국민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급성 전염병 관리를 위한 정부대책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수칙도 지키지 않는 일부 국민의 낮은 시민의식도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재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작금의 질병 전파 사례도 있고, 대규모 자연재해와 북한의 군사적 위협, 그리고 방사능 유출이나 대형 안전사고 등 인위적인 재난도 이에 포함된다.
양산이라는 지역사회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위와 같은 재난 발생 개연성이 전무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 통괄개념이 아닌 양산시 기초 단위 재난 대비 매뉴얼 확립과 시민의식 고취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난주 시내 일부 고층 건물에서 지진파 진동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일본 동쪽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래전부터 양산시 일대가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대에 속해 있다는 학설이 존재해 왔다.
그런가 하면 인근 부산시 고리원자력발전소 수명이 다한 원전 1호기의 계속 사용 문제가 대두하면서 양산지역 안전성이 문제가 됐고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설정을 둘러싸고 시와 시의회 간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자연재난에 있어서는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적 양호한 기상조건이라고 하지만 일부 지역 난개발로 인한 절개지 붕괴와 구조상 대형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일부 도로는 잠재적인 대규모 재난을 예고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종종, 민생을 책임지는 곳은 중앙정부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곤 한다. 복지정책이나 물가안정대책, 일자리 창출 등 과제들이 국가가 해결해 주어야만 하는 것으로 오도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 국가정책 방향에 따라 국민 생활이 좌우되고 있지만 시민 생활 평화와 안정된 생업 영위를 위한 사회 안전망은 지방정부에서도 체계적으로 다뤄야 할 우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장마철과 태풍에 앞서 상습수해위험 지역을 예찰하고, 영화관이나 쇼핑몰, 시장과 체육시설 등 다중집합시설의 안전대책을 점검하는 것은 평시에 해야 할 공무원 임무다.
미리 예고된 동원령에 형식적인 출석 체크나 하고 짜여진 각본대로 불 끄는 훈련을 한다고 해서 민방위 훈련을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제 사절하자. 모든 재난대비 훈련은 불시에 실제와 방불하는 방법으로 실시해야 한다.
제대로 된 매뉴얼 수립과 시행을 등한시하는 정부가 국민 비협조만 원망해선 안 된다. 시민의식을 탓하기 전에 정부의 안일한 대응책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세월호 사건을 벌써 잊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