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찾아줄 수 있어요?”
강주식 경사는 전화기 너머 나지막하게 들리는 정아무개(25) 씨의 목소리에서 왠지모를 떨림과 간절함을 느꼈다.
무연고자 신원을 확인하던 중 성인이 돼 더는 경찰서 보호신고 명단에 이름이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정 씨였기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통화였다. 그런데 조용히 듣고 있던 정 씨가 뜻밖의 요청을 한 것이다. 20년 전 헤어졌던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5살 때 고아원에 맡겨진 정 씨에게 남아 있는 기억은 어머니 이름뿐. 찾을 길이 막막했다. 강 경사는 유일한 단서인 이름과 대략적인 나이를 추측해 전국에 50대 중년 여성 400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몇 통의 전화든,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 달라는 정 씨의 간절한 목소리만 기억하고 탐문수사에 나섰다.
드디어 찾았다. 기쁜 마음에 곧바로 정 씨에게 전화했다. ‘하…’ 그런데 정 씨가 믿지 않았다. 20년 동안 찾아 헤맸던,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를 며칠 만에 찾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강 경사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봉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어머니가 살고 있는 경북 영주시로 정 씨와 함께 갔다. 기차역에서 눈물의 상봉을 했다. “엄마~!!” 정 씨가 달려가 울면서 어머니를 껴안았다. 강 경사도 눈물을 훔쳤다.
4년 째 실종ㆍ가출수사 업무↑↑ 정아무개(25)씨는 강 경사의 도움으로 20년 전 헤어졌던 어머니를 최근 다시 만났다. ⓒ
신고사건 외에 기획수사도 병행
양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여성청소년계 강주식(44, 사진) 경사는 실종담당이다. 주로 가출 청소년이나 지적 장애인, 치매 어르신을 찾아주는 일을 도맡아 한다. 그러다보니 실종된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하루에도 수 십 건 처리한다. 4년 째 이 일을 해오고 있고, 올해만 해도 해결한 실종사건이 무려 1천건이 넘는다.
물론 수사의 우선순위는 최근 신고된 사건을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이지만, 정 씨 사례처럼 오랫동안 경찰서 보호신고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기획수사를 하기도 한다.
정 씨는 비교적 운이 좋은 경우다. 고아원에 본인의 인적사항이 정확히 남아 있었고, 어머니 주소지도 비교적 정확했다. 또 두 사람 다 만나길 희망했다.
하지만 간절히 찾고 싶어도 찾을 만한 단서나 기억이 없어 수사 시작도 못해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렵게 찾았지만 한 쪽이 만나기를 거부해 끝내 상봉을 못하는 가족도 많다.
강 경사는 “지난해 겨울, 가출한 아들을 찾아달라며 한 어르신이 찾아왔어요. 가출한 지 25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가출신고를 한 거예요. 아들은 벌써 40대 중반으로 가정까지 꾸리고 살고 있었죠. 어렵게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은 만남을 거절했어요. 물론 그만한 사연은 있었겠죠. 하지만 어르신은 간절히 원했고 그 부탁을 차마 모른 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많이 아프시다’는 거짓말도 하고, 나중에는 부인한테 전화해 남편을 설득해 달라고 까지 애원했어요. ‘가족상봉은 안되겠구나’하고 포기했었는데, 올해 설 연휴에 아들이 연락이 와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가 명절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받아 애로 ↑↑ 강주식 양산경찰서 생활안전과 여성청소년계 경사. ⓒ
만남 거부하는 가족 “안타까워”
실종수사 과정에서 최근 강 경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바로 ‘보이스 피싱’이다. 자신의 전화를 보이스 피싱이라고 의심하며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경찰 신분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전화를 끊고 받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기도 한다.
또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실종자를 찾고도 가족에게 함부로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을 때, 만남을 거부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소설가처럼 온갖 슬픈 사연을 만들어 내야 할 때가 힘들다고.
강 경사는 “그래도 이 모든 것이 살아있어야 가능한 사연이고 갈등이죠. 실종가족을 주검으로 찾았을 때가 제일 안타까워요. 대부분 생활고를 비관해 한적한 시골길이나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 너무 힘들죠”라고 말했다.
강 경사는 16년 경찰업무를 하면서 교통관리, 소년형사는 물론 지역밀착치안을 책임지는 파출소 업무까지 다양하게 해 왔지만, 최근 몇 년간 학교폭력과 실종수사를 전담하며 진짜 ‘민중의 지팡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강 경사는 “어깨가 무겁지만 그만큼 보람과 자부심도 큰 업무임에 틀림없어요. 언제까지 이 업무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내 가족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