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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본지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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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유치 포기한 보스턴 시장
민생 안정이 무언지 잘 말해준다
치적 내세우려고 혈세 낭비하거나
특정 세력 위한 예산 퍼주기는
시의회가 견제하고 제동 걸어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1947년과 1950년 서윤복, 함기용 그리고 이봉주가 2000년 대회에서 우승했던,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대회다. 2013년 117회 대회에서는 결승점 부근에서 폭탄 테러로 3명이 죽고 200명 가까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서 깊은 마라톤 대회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 시가 지난 6개월 동안 추진해 온 2024년 하계 올림픽 유치 활동을 전격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 L.A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등 미국 내 다른 도시와 경쟁 끝에 공식 유치 후보 도시에 선정된 바 있는 보스턴이 올림픽 유치라는 범세계적인 이벤트 유치를 스스로 포기한 배경에는 시민을 우선 생각하는 그들의 공익적 행정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다.
시 당국이 올림픽 개최를 위한 도시 기반시설과 교통시설 공사에 130억달러 상당 시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 알려지자 시민의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보스턴시 1년 예산의 5배가 넘는 거액을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쓰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자 시장이 직접 나서 납세자에게 위험 부담을 떠안게 할 수 없다며 포기 방침을 밝힌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임기 중에 유치계획을 수립했지만, 박 대통령 사후 전두환 정권이 군부독재에 대한 비난 여론을 희석하고자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끝에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개최지로 선정됐다.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은 그 규모나 권위, 대외선전 효과에 이르기까지 국가 브랜드 광고 효과가 대단한 단일 이벤트다. 하지만 보스턴의 마티 월시 시장은 올림픽 유치가 장기적으로 큰 이득이지만 시 재정을 담보로 할 만한 것은 아니라며 6개월 만에 뜻을 접었다.
가슴에 와 닿은 부분은 시민 혈세를 쓰는 데 대한 그들의 책임의식이다. 선출직 정치인이기에 민심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지만 빚까지 끌어대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다 시 재정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도 아무런 책임지지 않는 우리 지자체 단체장의 일탈 사례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민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민생(民生)은 말 그대로 일반 국민의 생활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단어가 민생이다. 여야 간에 죽어라고 싸우다가 상대를 걸고넘어져야 할 때 주장하는 구호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걸핏하면 민생을 내세우지만 정작 국민의 삶을 걱정하는 것 같지 않은 게 문제다.
정부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오너 일가의 뜬금없는 일탈 행위와 무감각한 탈법 사례를 보고 들으며 많은 국민이 위화감을 느낀다. 흡사 구름 위에 사는 존재마냥 서민의 삶을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 그들의 부와 지위에 부러움보다 경멸의 눈초리를 보낼 때가 더 많다.
20년이 넘은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많은 지자체에서 부실한 재정 운용이 도마 위에 올랐고, 부정과 비리로 적지 않은 단체장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자의적인 예산 집행으로 시민 혈세를 낭비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리한 부채를 끌어댐으로써 자신은 업적을 남기지만 시민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지휘관도 없지 않다. 이런 일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은 견제 장치인 의회가 한통속이 될 때 가능하다.
양산천을 가로질러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일명 학다리는 중앙 일간지의 혈세 낭비 사례에 첫손가락에 꼽혀 알려진 명물이다. 수십억원을 들여 운동장과 춘추공원을 연결한 다리지만 지금껏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0명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효용 가치가 낮은 사례다. 이와 유사한 예산 낭비 사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요불급한 토지 매수 비용, 시유지 무상 제공으로 인한 세수 누락, 특정 단체의 회관 건립 지원과 외부 예술행사의 과도한 유치 지원 등 민생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예산 누수 현상은 시의회의 철저한 검증과 시정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올림픽 대회 개최라는 엄청난 이벤트를 유치할 기회를 시민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포기한 보스턴 시장의 결단을 전해 들으면서 우리 지자체도 이제는 외적 명분에 현혹되지 않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람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민생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