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詩 한 줄의 노트] 죄와 벌..
사회

[詩 한 줄의 노트] 죄와 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5/08/18 09:39 수정 2015.08.18 09:35
김순아 시인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45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 시인

--------------------------------------------------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인 동시에 이타적인 감정이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이 시는 바로 그런 사랑의 의미를 시인의 자조 섞인 음성을 통해 되돌아보게 한다.

김수영은 여섯 살 아래 김현경과 연애결혼을 했지만 순탄치 않은 사랑을 겪어야 했다. 결혼한 해 6.25가 터져 북한군 포로가 돼 끌려간 김수영은 거제도 수용소에서 두 해를 보냈다. 그 사이 남편의 생사를 몰랐던 김현경은 김수영의 친구 이종구와 살게 됐다. 전쟁 후 풀려난 김수영은 아내를 찾아가 다시 결합하자고 거듭 호소했다. 처음엔 김수영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젓던 아내도 더 외면하지 못해 다시 합쳤다.

그러나 한 번 깨진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마누라를 패고 집으로 와서는 남의 이목이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두고 온 지우산 따위에 연연하는 이 소시민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그는 이 일을 왜 이리 크게 떠벌리고 있을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는 구절이다. 뒤집어보면 이 말은 자신은 살인할 배짱도 용기도 없다는 것, 즉 남과 자신을 사랑할 각오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다. 내 눈에 그만 들어올 때,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내 ‘범행’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 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지금-여기, 쇼윈도부부, 무늬만 부부, 각방 부부로 사는 우리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